부산 한 대학가에 복합문화공간인 <문화골목>을 이끌고 있는 최윤식 대표는 그의 전공(건축사)을 살려서 개발되기 이전의 부산항·영도다리·광복로·대청정거리와 1953년 대화재로 소실된 옛 부산역, 1970~80년대까지 자리를 지키다 철거된 부산세관·상품진열관·조선상업은행 따위를 세밀화로 그려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루아크)란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지역 일간지 인터뷰에서 “인공 건축물도 오래되면 그것 또한 자연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연 파괴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이 후일 부산의 근대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국제신문, 2020.09.17.)
부산은 1876년 조일수호조약으로 인천, 원산과 함께 강제 개항되었고 일제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철도, 항만, 물류창고 같은 시설은 물론이고 일본인 거류지, 관공서, 백화점, 극장, 시장과 학교, 병원 등 숱한 건축물을 지었다. 언론사 보도(KBS 뉴스, 2020.07.05.)에 의하면 부산에만 현재까지 219개의 근대 건조물이 남아있다나. ‘근대도시 부산’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이들 대부분은 일본 고관이 살던 곳이거나 부산의 인적, 물적 수탈을 위해 세워진 관리 감독 기관 역할을 한 곳들이라 보존과 기록의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도 있지만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거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현장으로 위상이 정립된 근대 건축물들도 상당하므로 보존과 기록을 통해 남겨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문제는 경제개발과 산업화, 일제 잔재 청산, 특히 도시재생이란 명목 하에 ‘근대도시 부산'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들과 거리의 풍경이 점점 훼손되거나 사라진다는 데 있다.
작년 6월 한 근대 건축물을 두고 부산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김해평야 일대 치수와 비료 판매를 목적으로 세워진 부산 강서구 대저수리조합 건물을 관할 지자체인 강서구가 도시재생사업 명목으로 허물겠다는 계획을 세우자 부산시가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강서구는 새 건물을 지으려면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보존에 난항이 예상되었다. 건물 철거 방침에 비판이 하도 커서 관할 지자체가 설계 공모에 참여하는 업체에게 보존 방안을 받겠다고 한 걸음 물러섰지만 철거 결론은 변함이 없다는 그해 11월 후속 보도가 나왔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가 해운대 바닷가다. 이른바 해운대 신시가지라는 곳으로 이주하고 20년 동안 상전벽해가 된 해운대 일대를 고스란히 목격한 나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구치는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내게 주는 영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최신식이니 최고급이란 허세가 뿜어내는 위선과 위압으로 숨이 턱턱 막힌다.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이 도시에 애정을 느끼는 까닭은 한국 제2의 도시(같은 항구 도시인 인천에 밀린 지 한참 됐다는데 아무튼)라는 덩치에서 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니다. 마음 한 구석 허전하면서 사는 게 우중충할라치면 원도심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나라는 존재의 원형이 오래된 건물이란 역사성 속에 도사리고 있어서 번다한 나를 위로해주곤 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나는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반성하고 모색하면서 새롭게 재생하고자 한다. 인생을 도야하는 장소를 마치 이웃집 드나들 듯 편하고 쉽게 찾아갈 수 있음은 부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근대도시 부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승효상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자택인 <수졸당>과 봉화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하고 조성한 건축가이다. 그의 평생 건축 철학은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빈자의 미학’이다. 그는 한 저서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남의 집을 짓는 일이 고유 직능인 건축가라면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하면 인문학이라고 나는 주장해왔다. 물론 기술이나 공학적 요소도 있어야 하고 예술적 성취도 이루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뿐 건축을 포괄하지 못한다. 인류가 시작되어 집이 먼저 생겼지 기술이나 예술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상기하시라. 하이데거는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을 통해 장소에 새겨진다”라고 했다. 건축이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말일진대, 건축은 눈에 보이는 것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2016),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