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by 김대일

산지가 많고 평지가 좁은 부산의 원도심, 특히 동구, 중구, 서구 일대 해안은 산지가 발달해 있다. 일제 때 동구 수정동, 범일동 일대와 중구 중앙동 일부, 남구 우암동 일부에 이르는 해안을 매립, 방대한 매축지埋築地를 조성해 일본인 구역으로 개발되었다. 때문에 개항기를 거치며 부두 노동자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외지인들은 경사진 산지를 따라 올라가며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정착했다.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기존 정착지에서 더 위쪽 산지까지 누추한 판자촌 마을을 형성하며 부두 노동자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전쟁 이후 1960년대 산업화로 인한 이농 인구까지 몰려들어 산동네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런 산동네에도 길은 필요했다. 산복山腹은 산허리를 뜻하고 산복도로는 산 경사지를 개발하면서 빚어놓은 도로다. '망양로望洋路'는 범천동에서 범일동, 수정동, 초량동을 거쳐서 중구 영주동까지 10km 넘게 이어진 도로로 부산 산복도로 중에서도 유명하다. 이름이 말해주듯 도로에서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건 큰 재산이다. 같은 해운대라도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와 그렇지 않은 아파트는 가격 차가 제법 난다. 서울은 한강 조망권이 부동산 매매가에 웃돈으로 작용한다지 않나. 아무튼 바다든 강이든 물만 보이면 사람들은 환장을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대문을 박차고 창문만 열어젖히면 부산 앞바다가 내 집 마당같이 훤히 펼쳐져 있는 망양로 산복도로 사람들은 찐부자다.

평지적 패러다임에 빠진 차별과 혐오의 시선 때문에 주눅이 든 적이 없진 않지만 드넓은 대양을 앞마당으로 둔 사람들답게 산복도로 사람들은 그 모든 걸 껴안을 배포가 크다. 사는 게 궁색할지언정 살가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남루할 수는 있으나 걸릴 것 없는 자유가 또한 넘친다. 산복도로가 지나가는 부산 수정동, 초량동에서 살았고 아직도 살고 있는 강영환 시인은 그 삶의 공간을 고스란히 시의 공간으로 옮겨 와서 연작시를 완성했다. 제목은「산복도로」. 그 중 하나를 옮긴다.

무동을 타고 아이야

바다를 보아라

네 눈의 높이까지 바다를 이끌고

바다 속 깊이까지 속속들이

제방을 타고 넘는 속마음을

무동을 타고 아이야

우리들이 지닌 수족으로 갈 수 없는

수면 위로 명멸하는 금은의 나라

지켜 선 등대

담 너머에서는 무엇이 이루어지는가를

꿀 먹은 눈으로 손짓해

키 작은 아이에게 일러주며

무동을 타고 아이야

- 강영환「산복도로 4-明童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동구 산복도로 곁에 붙어 있다. 학교 부지를 같이 썼던 중학교가 2020년에 완전 폐교되고 원도심 청소년 인구 급감으로 학생 유치에 애를 먹어 고등학교도 존립을 장담할 수 없다는 소문이다. 높다란 전망대를 연상하는 교정에 서서 부산항 보던 고교 시절이 문득 그립다. 내 가슴 속 산복도로 유전자가 아직 죽지 않고 꼬물거리는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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