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로

by 김대일

P는 이혼 소송 중이다. 한때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한 지붕 아래서 몸 섞었던 아이들 엄마는 집안 가재도구를 싹 다 들고 별거에 들어갔고 얼마 안 지나서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하는 이혼 소송을 걸었다. P에게 유일한 삶의 목적인 아이들을 데려간 것도 모자라 어렵사리 장만한 아파트도 반으로 쪼갤 판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내밀한 것이어서 친구랍시고 왈가왈부할 계제는 아니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30년 가까이 지켜본 P의 면면으로 봐선 많이 억울해 보인다.

P가 한때 문학적 재능을 발했던 시인이었기에, 혹은 삶에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어도 참된 삶을 위한 자기성찰이자 균열의 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그마한 위안 삼아 문학비평가의 길로 전향했다고 해서, 그것도 아니면 베테랑 교육자로 안정적이고 윤택한 생활을 영위한다고 해서 내가 자극을 받거나 행여 질투에 휩싸이진 않는다.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제 노후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꼴이 나나 걔나 한통속임을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심리적 거리감을 오히려 몇 센치 더 줄어드는 쾌거를 거뒀으면 모를까.

P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을 감추지는 않겠다. 그의 문학적 소양을 어리보기인 나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소싯적 같잖은 습작력을 마치 타고난 글재주인 양 우쭐대던 나를 착각의 수렁에서 건져준 이가 P였다. 물론 그가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내 망상을 깨부순 건 아니다. 오직 고급진 창작열을 구현해냄으로써 '니까짓 게 뭘 한다고'란 자기환멸을 유도하는 신공을 시전했을 뿐.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때부터 커다란 좌절감을 맛보게 한 장본인한테 여가 삼아 다시 펜대 굴려보겠다면서 구닥다리 옛날 일까지 들먹거렸더니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면서 조언인지 위로인지 건넨 한 마디.

- 글은 쉽게 써야 장땡이다. 너는 잘할 거야.

병 주고 약 주는 게 틀림없지만 그리 밉지 않다. 덕분에 문학비평가의 덕담을 방패막이 삼아서 블로그다 밴드다 브런치 안 가리고 휘갈기고 다니는 중이다.

술 못 마시고 입까지 짧은 P를 위로해주자면 뭐가 필요한지 적잖이 고민된다. 그렇다고 돼먹잖게 문학을 운운할 수도 없고. 오래전에 종영한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라도 찾아 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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