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 혹시 다른 여자와 정분이 날까 불안해하는 큰딸 노파심이 어제 글감이었다. 오늘은 고독을 핑계 삼을 작정이고 내일은 유대감을 게시글로 올릴 텐데 사흘에 걸친 세 꼭지 공히 여자족이 글감의 중심에 서 있다 공교롭게도. 멀쩡한 마누라를 놔두고 바람이라는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외도를 벌일 배짱이 눈곱만큼도 없는 깎새이지만 생물학적 성sex 대신 사회적인 성gender으로서 여자족을 사랑하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겠다. 파면 팔수록 흥미진진한 여자족 특성은 참 많다. 종특 중에 오늘은 고독이다.
물방울 무늬의 빨간색 반다나를 머리에 두르고 데님 셔츠를 입은 채 오른팔 근육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과 그 상단에 “We Can Do It!” 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는 포스터가 낯이 익다. 이 포스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여성의 경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벌인 캠페인의 산물로 1942년 피츠버그 그래픽 디자이너 하워드 밀러가 그렸단다. 이름하야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 리벳이란 대형 못을 박아 비행기 등 각종 철골 구조물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켰고 로지는 여성 이름이었으니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후방의 군수 공장에서 용접, 비행기 시공, 군용 차량 조립 따위 일을 하며 ‘리벳공 로지’로 불리었단다.
포스터 속 로지의 실제 모델인 나오미 파커 프랠리는 2018년 1월 20일 향년 96세로 사망했다. 리벳공 로지는 반세기 넘게 여성 노동자의 아이콘으로 소비됐지만 프랠리가 로지임이 밝혀진 것은 불과 2년 전인 2016년 뉴저지 시턴홀 대학 제임스 킴블 박사가 6년 추적 끝에 포스터 속 여성이 프랠리임을 증명하면서라고. 프랠리가 실제 모델임이 증명되기 전까지 미시간주 출신 여성 호프 도일(2010년 사망)이 모델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강인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벳공 로지'의 실제 모델이 밝혀진 사실보다 깎새가 더 주목했던 건 프랠리의 인터뷰였다. 프랠리는 당시 주간지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기나 부를 원하지 않았다”며 수십년 간 조용히 지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나의 정체성을 원했다”고 했다. (경향신문, 2018.01.23. 기사 인용)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는 1941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가르보의 은퇴를 두고 동성 연인을 위한 것이었다는 둥 할리우드를 ‘공장’으로 표현할 정도로 배우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는 둥 늙고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라는 추측까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짤막한 일대기 형태로 그레타 가르보에 관해 쓴 신문 기사를 읽다가 불현듯 '리벳공 로지'란 페르소나에 연연하지 않았던 프랠리의 목소리가 가르보를 통해 다시 듣는 듯했다.
하지만 1941년 <두 얼굴의 여자Two-Faced Woman>가 흥행에 실패하자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 뒤로는 잘 알려져 있듯 50년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비혼으로 살았다. 마치 그가 <그랜드 호텔>에서 읊조렸던 대사 “혼자 있고 싶어요”처럼.
(···)
악의적이고 저급한 루머에서 평생 ‘여배우’라는 신화적 이미지에 갇혀 그가 느꼈을 고독이 그려진다. (한겨레, 2019.10.19. 기사 인용)
속물적 영욕 대신 고독을 택한 두 여자. 그 고독은 어쩌면 우아한 sein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지. “다만 나의 정체성을 원했다”란 일성은 침묵으로 일관했던 가르보가 프랠리를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 로지Rosie는 우아하다Garbo.
* Garbo - 스웨덴 사람인 그레타 로비사 구스타프손의 예명으로 스페인어로 ‘우아함’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