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동년배인 둘은 깎새 점방을 거의 함께 찾는다. 다부진 풍채를 더 부각시키는 스포츠형을 선호하는 한쪽과는 달리 조막만한 머리통에 머리숱까지 헤실헤실한 다른쪽을 붙여 놓으면 '뚱뚱이와 홀쭉이'를 연상시킨다. 겉으로 봐서는 썩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같이 붙어다니는 까닭은 같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데다가 사무실까지 엎어지면 코가 닿아서라나. 둘은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어울려 술잔을 기울인다고 했다. 출출해지는 퇴근 무렵, 눈빛만 스쳐도 그길로 어깨 겯고 선술집 직행이랬다. 할 말이 뭐가 그리 많으면 낮에 보고 밤 늦도록 또 술잔을 기울이냐 물었더니 그냥 버릇이랬다. 엇비슷한 일을 하는 처지끼리 통하는 애환이라는 게 한 이불 덮고 자는 마누라조차 못 알아먹는 법이라면서. 게다가 끼리끼리 어울려야 오래가는 법이라고 명토를 확 박아 버렸다. 벗을 쪽수로 따지는 정량적 판단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새삼 일깨우게 하는 '뚱뚱이와 홀쭉이'. 누가 '벗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봤는지 연암 박지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 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친구론論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게 대하소설 『임꺽정』이라고 깎새는 단언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수다스럽다. 만나 툭하면 밤을 새워 이야기한다. 죽일까 살릴까 살벌하다가도 잠깐 이야기나 나누자며 각자 제 팔자타령을 늘어놓으면 거기에 감화돼 뚝딱 의형제를 맺는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 어떻든 일단 제쳐두고 당사자에게 단도직입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쾌도난마는 눈앞에 상대방을 앉혀 놓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끌어냄으로써 가능한 일이겠다. 물론 지금처럼 SNS라는 게 있을 리 만무한 시절이었으니 용건이 생기면 우선 만나고 볼 일이고 만나면 싫든 좋든 밤새 노닥거리는 번거로움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겠지. 요는 얼굴 맞대고 지겹도록 떠들다 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게 상대를 꿰뚫는다는 거다. 그러다 결국 '뚱뚱이와 홀쭉이'가 되고 말이지. 깎새가 그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