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by 김대일

그날도 속절없이 유투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보게 된 건 박영미가 1990년에 발표한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부를 만한 가수가 불렀으니 노래는 당연히 히트했다. 엄청난 가창력을 장착한 가수가 R&B 소울이란 비기까지 휘두르니 속수무책일 밖에. 1990년대 파릇파릇하던 박영미를 뚫어지게 보는데 작사, 작곡, 편곡까지 맡았던 인물의 이름이 자막으로 떴다. 과연! 탄성이 절로 튀어 나왔다. 김성호였다. 박영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박영미한테 부르게 만든 김성호는 깎새가 꼽는 몇 안 되는 한국 대중가요사의 능력자다.

KBS가 지금처럼 망가지기 전 <백 투 더 뮤직>이라는 프로그램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불리워지는 명곡의 사연을 소개하는 추억여행, Song큐멘터리를 표방했다. 거기에서 김성호를 처음 봤다. 놀랐다. 숱하게 듣던 노래였는데 정작 노래 부른 가수 얼굴을 한번도 본 적 없다니. 그리고 <김성호의 회상>, <웃는 여잔 다 이뻐>, <풍선>, <나는 문제없어> 등을 작곡한 이가 김성호라는 사실에 또 놀랐다. 거기에 그 노래들처럼 서정적이면서도 건실한 인물임을 목도하니 연거푸 놀라면서 퍽 안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가수와 노래를 동일시하는 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 인물을 분한 배우를 혼동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그럼에도 노랫말과 멜로디에 담긴 정서가 가수 그 자체라고 고스란히 믿어 버린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최호섭이 부른 <세월이 가면>이 그랬고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가 그랬으며 고故 박성신의 <한 번만 더>와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이 특히 더 그랬다(공교롭게도 뒤의 두 곡은 김성호가 모두 작곡했다). 그들은 사춘기 깎새 감수성을 무럭무럭 키워준 자양분이면서 겪어 보지 못한 사랑과 이별을 추체험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김성호의 회상> 노랫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라고 1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가수는 선선히 대답했다. 자기가 작사, 작곡을 했으니 노래를 관통하는 뉘앙스를 꿰뚫고 있겠지만 그가 지목한 가사야말로 노래 전체를 아우르는 데 가장 탁월하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려(회상) 하지만 어떠한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는 허탈이 듣는이를 더욱 아리게 부추기니까.

실연失戀을 회상하는 건 참 가슴 저린다. 아무리 오래됐을지언정. 만약 그때 그 사람이 박제된 사진 한 장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면 회상이 그나마 덜 센티멘털해질지 노래가 묻고 있는 듯하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나의 눈을 보았지 우흠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멀어져 가는 뒷모습 보면서/두려움도 느꼈지 우흠/나는 가슴 아팠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한두 번 원망도 했었지만/좋은 사람이었어 우흠

하지만 꼭 그렇진 않아/너무 내 맘을 아프게 했지/서로 말없이 걷기도 했지만/좋은 기억이었어 우흠/너무 아쉬웠었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이제는 혼자라고 느낄 때/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김성호의 회상> 가사)



https://www.youtube.com/watch?v=FXfyvQl2bD0


https://www.youtube.com/watch?v=MrDVkT9tl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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