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by 김대일

<셀럽병사의 비밀> 이란 TV 프로에 김현식이 등장했다.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방송은 연례행사인 양 심심찮아서 이 내용이 저 내용 같고 저 내용이 이 내용 같지만, 김현식이라서 일하다 말고 브라운관속으로 홀딱 빠져들고 말았다. 김현식이 등장하면 깎새는 속으로 운다. 때이른 죽음이 슬픔을 부채질하지만 그보다는 죽음을 저당잡히면서까지 끝내 놓지 못한 노래를 향한 집념 때문에 애간장이 녹아서. 그렇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애'쓰지 않은 노래는 없다. 그러니 그 어떤 노래도 함부로 흘려 들을 수가 없다.

깎새가 대학에 들어간 1991년 당시 김현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90년 11월 1일 사망했다. 사망 직전에 낸 6집 앨범 수록곡 <내 사랑 내 곁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 외에 김현식에 대해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갔더니 술추렴을 할 적마다 젓가락깨나 두들겨 본 선배들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김현식 노래를 울부짖는 걸 숱하게 목격한 뒤로는 이내 김현식에 젖어 버렸다.

S형은 깎새와 같은 91학번이다. 깎새 고교 동문 선배이면서 같은 대학교 법학 88학번인 J형의 친동생이다. J형 소개로 만났지만 출신 고등학교는 달랐다. 같은 91학번이긴 하나 자기는 재수생이니 꼭 형으로 존대하라고 깎새를 을렀다. 성격 까칠한 S형을 따라 하루는 형 집에서 하룻밤 신세질 때였다. 군대 간 J형이 제일 아끼는 거라면서 꺼낸 건 말로만 듣던 김현식 1집, 2집 카세트 테이프. 거기에 3집, 4집, 5집, 6집까지 밤새 카세트를 돌려댔다. 그 밤이 계기가 되었던 게 틀림없다. 팬덤에서 나아가 김현식은 우상이 되었다.

밥은 거를지언정 술 거르는 건 못 참던 철부지 대학생 시절, 학사주점 골방에 처박혀 니나노 장단에 맞춰 <떠나가 버렸네>, <사랑했어요>, <언제나 그대 내 곁에>, <그대와 단둘이서>, <그대 내 품에>, <그 거리 그 벤치>, <비처럼 음악처럼> 따위를 마냥 불러제꼈다. 그건 당시 사귀던 여자에게 바치는 연가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녀가 김현식을 썩 좋아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술자리에서 제 차례가 돼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쭈뼛쭈뼛 부른 노래는 윤종신의 <처음 만날 때처럼>이었고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을 즐겨 들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자마자 열광하던 보통의 X세대였다. 그에 비해 김현식 노래는 지지리 궁상이나 떠는 예비역 선배들과 어울리는 막걸리 파티에서나 통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는 깎새를 그녀가 못마땅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김현식 1주기가 가까워지자 그 추모 열기에 힘입어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학과 연극 공연 일정이 겹쳐 아쉬워하던 깎새를 위해 입장권을 구매해 준 이는 그녀였다. 연극이 끝나면 으레 따라오는 뒤풀이 행사 때문에 애써 구한 입장권이 날아갈지 모르는데도 그녀는 개의치 말라 했지만 결국 그녀와 탈주를 감행했고 <졸업>이란 영화의 라스트 신처럼 둘은 상영관이 있는 부산KBS홀로 향했다.

한영애가 나레이터인 김현식 1주기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자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객의 때이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스크린에 투영된 김현식의 생전 모습을 바라보면서 깎새는 내내 울었다. 그런 그를 그녀는 보듬어 줬고 어느새 그녀의 품 안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포근한 엄마의 품인 듯. 김현식과 그녀에게 둘러싸여 깎새는 슬픔과 행복이 뒤범벅이 된 밤을 보냈던 것이다.


* 사족- 순전히 깎새 뇌피셜임을 전제로, 세상에 나온 수많은 노래 중에서 갖은 재주를 다 부린다 한들 원래 불렀던 가수를 결코 능가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노래가 있다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김범수, 김장훈, 박효신, 이승철, 김현식과 음색이 비슷하다는 임재범까지 이 시대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커버를 시도했지만 비스무리하다는 평가는 들어도 김현식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김현식 노래는 잘 불러서 될 문제가 아니다. 김현식처럼 '애'쓰지 않으면 그저 아류에 불과할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egYa5Cw1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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