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청년(청소년 아닌)이 엄마로 보이는 중년여자와 점방에 들어오면 십중팔구 군대 가기 직전이다. 풍월 읊는 서당개가 다 된 깎새가 "군대 가요?" 물으니 "예" 모자가 합창을 했다. 먼저 온 손님 머리를 매만지다 "육군 규정으로 깎아 줄까요?" 재차 물었더니 우물쭈물하는 게 여느 입대 예정자와는 좀 달랐다. '어떻게 기른 머리카락인데!'라며 끝까지 미련을 못 버리는 줄 착각한 깎새가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 하는 그 놈의 오지랖이 또 발동했다.
"막상 보면 아리까리한데 규정에는 딱 맞게 깎아드리리다."
헌데 돌아오는 답이 엉뚱하다.
"상륙돌격머리면 몇 밀리입니까?"
듣자마자 감이 팍 왔다. 해병대 입대구먼.
"포항으로 가요?"
"내일입니다."
"희한하네. 딱 작년 이맘때였지 아마. 똑같이 해병대 간다고 상륙돌격머리로 깎아 달라던 청년이 있었어요. 그 청년 대여섯 달 뒤 휴가 받아 또 왔어. 고맙더라구. 우리 점방 이러다 해병대 전문 커트점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작년 이맘 때 상륙돌격머리 깎고 입대한 청년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 10월 중순, 휴가 나왔다 복귀를 앞둔 군인처럼 보이는 청년이 점방에 들어왔다. 과연, 해병대라면서 상륙돌격머리로 깎아 달라고 주문했다. 낯이 익어 혹시 대여섯 달 전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상륙돌격머리를 깎아 달라던 그 청년이냐니까 대번에 그렇다고 했다.
잊지 않고 찾아 주니 고마웠다. 일병이니 정기휴가 나왔다 복귀를 앞둔 거겠거니 짐작했는데 정기휴가는 다음이고 포상휴가랬다. 오래되긴 했지만 경험 상 군대 휴가 수순이라는 게 정기휴가 다음이 포상휴가가 통상이다. 그 이유로 군대 들어가 포상휴가 갈 만큼 공로를 쌓자면 짬밥을 제법 먹어야 가능한 법인데 이 청년 무슨 대단한 재주를 지녔길래 들어가자마자 포상휴가부터 따낸 건지 의아했지만 청년 대답에 금세 수긍이 갔다. 국군의 날 행사 치른 뒤 받은 휴가라니까.
반가웠던 마음이 이내 싹 가시고 갑자기 성이 치밀었다. 허우대 훤칠한 미남자에 짬이 한참 아래니 해병대 몫 행사 인원으로 징발되었을 게 분명하다. 하필 가장 무더웠던 그해 여름 피크 3개월 내내 열병식서껀 퍼레이드 연습하느라 피똥깨나 쌌을 건 불문가지고. 여기서 잠깐, 열병식이란 걸 안 겪어 본 사람은 결코 모른다. 그게 얼마나 고되고 빡치는 상上 노가다인지. 행진 중에 오와 열 맞추기는 기본이고 흔드는 팔 각도까지 딱딱 맞춰야 하는 중노동을 30도가 넘는 땡볕 아래에서 무한반복하는 짓은 무모하다 못해 미친 짓이다. 아니나다를까 들어보니 그 무더위에 행사 준비하느라 픽픽 쓰러져 나간 장골들이 부지기수였단다. 자대를 떠나 열악한 예비군훈련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하니 3개월 생고생이 안 봐도 비디오였다. 청년 부모도 골이 단단히 났던 모양이다. 나라 지키러 군대 보내놨더니 애먼 짓 하느라 사서 고생하는 꼴을 그저 그러려니 이해한다면 그런 부모가 더 이상한 법이니까.
민폐라는 비난이 빗발치는데도 국군의 날 행사를 지난 2년에 걸쳐 굳이 강행한 게 친위 쿠데타를 벌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가시질 않자 모골이 송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까지 상한다. 야욕을 채우기 위해 국군을 노릿개감으로 삼은 자들 아닌가.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봄바람에 꽃잎 떨어지듯 속절없이 잘려 나가는 장면은 의외로 처연하다. 대기석에서 말없이 그런 아들을 바라보던 엄마 얼굴은 담담하면서도 복잡해 보였다. 해병대 전문 커트점을 꿈꾸는 깎새가 위로랍시고 한 마디 거들었다.
"지시가 부당하면 안 따르는 게 군인정신이오. 군생활 무사히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와요."
제법 고상한 멘트라 자부했건만 다음날 당장 입대해야 해 심란해진 청년과 그 엄마 앞이라 반응은 영 신통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