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신전에 전차를 바쳤다. 왕은 그 전차를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단단하게 묶어 놓았다. 당시 ‘전차를 묶은 매듭을 푼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전설이 있었다는데 그 지역을 지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단검을 꺼내 단칼에 끊어 버렸다. 이른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어지럽게 뒤얽힌 사물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한다는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다른 이름이겠다. 어떤 어려운 문제도 발상을 바꾸면 해답이 쉽게 나오는 법이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개념 중 열등감과 보상, 우월을 향한 노력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기대면 이렇게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즉, 남보다 못나고 덜떨어지는 점은 차고 넘치지만 그렇다고 낙담하고 좌절감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된다. 자격지심이란 늪에 빠진 자신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오기를 부추기는 힘이 오히려 열등감이고 그걸 밑천으로 삼아 우월을 향해 분투할 수 있으리라. 삶은 요행이 아니니까. 글을 끼적일 적마다 깎새는 특히 이 점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더 채찍질한다.
철부지 어린 시절 글 쓰는 게 재밌었다. 뭔가를 끼적거릴라치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흐뭇해지는 기분을 종종 느꼈다. 비록 글 잘 써서 상 받은 적은 없지만 마음 맞는 친구와 습작노트를 주고받으며 작가의 꿈을 꾸기도 했더랬다.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한 건 그 꿈을 펼치기 위한 발판이었다. 헌데, 입학한 지 채 한 학기가 안 지나 꿈은 출항도 하기 전에 좌초되고 말았다. 요즘 시쳇말로 '현타'라고 하던가, 혼자 잘난 맛에 끼적거렸던 짓이란 게 우물 안에 퍼질러 놀고 자빠진 개구리의 유치한 장난이나 마찬가지라는 현실 자각 타임이 들이닥쳐서.
문재文才가 빨리 트인 남자 동기는 또래답지 않은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신입생인데도 대학 신문사가 주최하는 문학상 시 부문에서 대상을 받자 떡잎부터 남다르다는 호평이 자자했다. 그가 쓴 시를 읽자마자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부끄러움이랄지 좌절감으로 얼어붙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깎새는 의외로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다가 '이게 아니로구나!' 판단이 서자 이내 체념했다. 글 파먹고 살겠노라는 낭만 따윌 애저녁에 집어치웠더니 들떠 제 발로 들어간 학과에 미련이 없어진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지향점을 잃어 버린 뒤로 대학생활은 물론 그 이후 행보까지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손대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기 마련이라는 패배의식이 심신을 지배하자 급기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끝이 안 보이는 바닥으로 추락하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조언했다. 응어리진 근심 걱정을 속으로만 삭이지 말고 바깥으로 푸는 편이 마음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테니 그게 무엇이 됐든 일단 시작하는 게 신상에 이롭겠다나. 수중에 가진 게 별로 없는 쪽박 신세였던 탓에 끼적대는 시늉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길로 속는 셈 치고 자판을 두들겼다.
별다를 것 없는 글감이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던 옛 추억, 깎새와 가족 사이에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상, 깎새를 둘러싼 주변인과 그 정경을 소소하게 데생해 나갔다. 하지만, 말이 쉬워 글쓰기지 단 한 글자라도 끄적여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글쓰기 작업이 의외로 까다롭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에 공감할 게다. 결코 제 생각대로 써지질 않았다. 고쳤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하고 그 자리에 꼭 들어가야 할 단어나 구절이 안 떠오르면 머리통이 깨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마른 걸레 쥐어짜듯 아득바득하다 보면 잡념은 사라져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서 큰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용을 써 기어이 한 꼭지 완성시키고 났을 때 밀려드는 성취감은 가히 카타르시스에 견줄 만하다. 묵은 때를 벗긴 뒤 따라오는 후련함처럼 심신이 한없이 삽상해지는 것이다.
글쓰기가 습관이 되고부터 족쇄처럼 옥죄던 선입견이 무너진 건 무척 고무적이다. 글 쓰는 사람은 세상에 따로 있다는 열등감이랄지 이왕 써야 할 글이면 고상하고 아름답게 치장해야 한다는 강박증 따위가 완연하게 옅어졌다는 게다. 글쓰기가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능력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과문한 범부일지언정 솔직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만족해한다면 하나의 노리개감으로써 충분히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나름 획기적이기까지 하다. 글을 쓸 때면 자기 자신한테 집중할 수 있다. 마침내 터득한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방법이다.
글 쓰는 재미로 신나던 어느 날, 동기 모임에서 만난 지금은 국어 교사이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 대학 시절 문재 뛰어난 동기가 깎새가 쓴 글을 봤는지 한 마디 거들었다.
다사다난한 삶을 진솔하게 표현한 글이 사람들에게 진짜 감동을 선사하는 법이야. 글을 어떻게 쓰는가보다는 무엇을, 왜 써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네가 보여 준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감수성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네 글은 매력적이야.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로고.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들었던 녀석한테서 상찬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