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는 5만 원씩 '노란우산' 부금을 다달이 납부하고 있다. '노란우산'은 자영업자가 폐업을 하거나 늙어서 더 이상 점방을 꾸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 미리 마련해 두는 일종의 퇴직금 제도이다.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가 내세우는 소득공제니 다양한 복지 제공 혜택 따위에 구미가 당겨서가 아니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여력이 없었던 지난 20년 가까이 중지한 국민연금을 최근에서야 월 최저액으로나마 납부 재개를 하긴 했지만 나온다 한들 쥐꼬리만할 연금액인지라 혹시 보탬이 될까 하는 타산에 기댄 바 크다. 깎새 노릇이 정년이 없긴 하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마누라한테 막걸리값 달라고 손 벌릴 수야 없잖은가.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합하면 제법 두둑하다는 걸 으스대려는지 월 수령액 끝전까지 고스란히 까발리는 노인이 돈 걱정 없는 유유자적한 말년을 즐기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이룩해 내려고 내던진, 본인 표현을 빌자면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과거, 요즘 시쳇말로 '영끌'한 청춘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땐 갸우뚱해졌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지금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려는 과장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는 없는데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이연된 행복이 썩 달갑지가 않아서였다. 유유자적한 인생을 왜 꼭 말년에 누려야 할까. 한 살이라도 더 젊어서 속 편하게 사는 게 뭐가 어때서. 꼭 골을 넣어야지만 축구가 재미있고 주자가 홈을 밟아 점수를 따야지만 야구가 흥미로운 건 아니잖는가.
기본소득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임을 숨기지 않는 깎새다. 기본소득이야말로 공고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약간이라도 허물어 숨통을 트이게 하는 건강한 틈입이다. 혹자는 공짜돈이 생기면 일하지 않고 딴짓거리를 일삼을 거라면서 기본소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아 보다 안정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반박이 그 위험성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라.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서 누구나 행복 추구권을 누릴 수 있고(요즘 들어 의구심이 일지만) 시민 모두를 동등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 만큼 곳간도 넉넉해졌다.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는 애먼 데다 낭비하는 혈세만 가지고도 시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충분히 보장해 줄 수 있단 말이다.
깎새는 가끔 상상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소득이 통장에 매달 따박따박 꽂힌다면 당신은 무얼 할 텐가. 말로만 듣던 '오마카세'를 즐겨볼 텐가. 그러시라. 두서너 달 안 쓰고 차곡차곡 모았다가 남들 다 간다는 제주도, 아니 동남아 여행을 떠나볼 텐가. 당연히 그러시라. 살림살이가 하도 빡빡해서 이전에는 꿈도 못 꿔 봤을 골프, 필라테스, 요가 따위 뭐든 상관없이 레저를 즐길 작정이신가. 얼마든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돈의 노예처럼 그 권리를 저당 잡힌 채 말년까지 이연시킬 까닭이 전혀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주욱 이어져야지 인간다운 참 행복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그런 행복을 누구나 공평하게 누려야 인간다운 것이고. 노란우산 얘기 하다 말고 너무 나갔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노동 욕구가 낮아진다거나 늘어난 소득을 단순히 쾌락을 위해 소비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교수이자 작가이며 사회운동가인 라즈 파텔이 이렇게 반박했다.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고)노동시장에서 이탈한다면 그들은 무엇을 할까.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인생을 예술가처럼 산다고 해도 전혀 나쁘지 않다. 기본소득 실험의 취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롤스로이스 같은 사치품을 향유하도록 하는 게 아니다. 기본소득은 그저 기초 생활을 영위하고 약간의 저축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수입일 뿐이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늘 그들이 꿈꿔왔던 의미있는 일에 나서지, 마약을 흡입하거나 비디오게임에 심취하지는 않을 것이다.(경향신문, <'자본주의'를 되묻다> 인터뷰, 2023. 06. 13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