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사나우면 곤란

by 김대일

분명히 엊그제 커트하고 염색까지 한 단골이 삼색 회전간판 전원이 켜지자마자 득달같이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깎은 머리를 좀 고르려고 새벽 댓바람부터 달려온 건데 깎새로서는 고민부터 앞섰다. 선심 쓰듯 가위질 몇 번 해주면 단골 앞에서 생색 내고 좋을 성싶지만 그게 그리 간단히 여길 계제가 아니다.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또는 거기서 얻은 소득을 뜻하는 '마수걸이'가 장사치한테, 아니 최소한 깎새한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알면 고민이 이해될지 모르겠다.

그간 경험에 비춰 보건대 개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그날 일진은 천지 차이다. 하여 출근해 첫 손님을 맞이할 때까지 처신에 엄청 신중을 기한다. 보고 듣고 만지다 부정 탈 듯싶으면 얼씬도 안 한다. 장사치 되고 나더니 일진 운운하며 미신 떠받드는 꼴이 같잖다고 비웃어도 하는 수 없다.

새벽 출근했더니 점방 문 앞에 개똥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으면 하루 종일 찜찜하다. 마수걸이 손님인 줄 알고 반갑게 맞았더니 한 푼 적선하라고 동냥질하는 낭인이면 탕비실을 뒤져 찾아낸 소금을 기어이 뿌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날 올 손님, 그날 올릴 매상에 혹시 동티가 날까 저어되어 벌이는 필사적인 자구책이다. 푼돈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장사치 마음, 의외로 간절하다. 그러니 아침에 본 개똥 때문에 개똥 씹은 얼굴을 하고 놀부 마누라가 밥주걱으로 흥부 뺨 때리듯 동냥질하는 낭인한테 심술을 부려도 그 놈의 일진이 뭐라고 오죽하면 저럴까 너그럽게 이해를 바랄 뿐이다.

마수걸이라 안 받을 순 없어서 반값만 받는 선에서 낙착을 봤다. 막상 요금을 건네받고 났더니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그래도 단골인데. 다행히 입장이 바뀌면 자기도 똑같이 그리 했을 거라고 쿨하게 받아들이는 단골 덕에 안도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서 그런가 그날 매상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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