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196)

by 김대일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이지만 문제는 그 어느 것도 그보다 낫지 않다고 윈스턴 처칠이 말했다지. 그 빌어먹을 민주주의를 지켜 보겠다고 속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는데도 다른 상한 영혼들과 어깨 겯고 광장에 나서는 모든 상한 영혼들. 위로가 필요하고 희망이 절실하다.)

작가의 이전글배수관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