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도 있으니 좀 낫다

by 김대일

한 블로거가 깎새가 4년 전에 써서 올린 글을 읽고 황송하게도 '감동하면서 읽고 갑니다'란 댓글을 달았다. 도대체 무슨 글을 봤길래 저러나 싶어 찾아 읽어 봤다. 창피하게도 자기가 쓴 글을 읽다가 찔끔거리고 만 깎새. 그때가 새삼 떠올라서 말이다.

세상 먼저 하직한 대학 동기가 그리우면 미련곰탱이를 찾는다. 사회복지 공무원인 녀석은 임지를 돌고 돌다가 깎새 동네 가까운 데까지 왔다. 조만간 해운대시장 부근에서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여야겠다. 거기면 녀석이 움직이기 용이할 테니.



Do ut des(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L이 죽던 날은 모처럼 K와 만나 편하게 한 잔 하려던 날이었다. 월요일 오후가 가장 편하다는 소릴 내가 언제 지껄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귀담아들었다가 휴가를 냈다는 K가 연락이 온 건 이틀 전 토요일이었고 녀석의 그런 배려가 미치도록 고마웠다. 월요일 아침, K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는데 부음이었다. 급작스런 비보를 접한 나만큼이나 충격이 컸던 K였다. 그날 저녁 같이 조문을 하고 수요일 장지에도 동행하기로 했다.

L과 K는 같은 과 동기들이다. 둘 다 교육계에 종사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L이 생전에 신망 두터운 정교사로 승승장구했던 반면 K는 기간제 교사라는 현실에 부딪혀 고배만 흠씬 들이켜다 교단을 떠났다는 점에서 그 둘의 교사 역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 K를 종종 언급했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 내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제 잇속 한번 제대로 못 챙기는,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곰과 소가 흘레붙어 나온 새끼' 같은 K를 안쓰럽게만 여겼었다. 하지만 타산이랄지 가식과는 거리가 한참 먼 천성 덕에 인생이 굴곡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녀석이 주인공인 여러 비화를 통해 뒤늦게 깨달으면서 더 이상 녀석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파란만장했던 전반생을 밑거름 삼아 남은 후반생은 보다 유여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다행히 늦은 나이임에도 2년 전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녀석의 일상은 전보다는 탄탄해졌고 장밋빛 미래도 꿈꿔 볼 만해졌다.

L을 묻고 장지를 떠날 때 나는 K 차를 얻어 탔다. 새벽잠을 설쳤다는 K는 푸석푸석했다. 느닷없는 사별을 감당하기가 K나 나나 너무 벅찼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무거운 침묵이 심신을 더 옥죄기 전에 흘러간 유행가를 읊조리듯 우리는 옛 추억을 일일이 들춰내 뇌까렸다. 단물 다 빠진 껌 같은 과거지사를 두고 한참을 헤실거린 끝에 K가 말했다.

"너라도 있으니 좀 낫다."

고마웠지만 내가 할 소리였다. K라는 인간 덕에 나는 곁에 친구 하나 없는 각박한 인간이란 비난을 면했다. 그러니 중신아비를 자청해서라도 미적미적거리다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지 모를 녀석을 구해주고 싶다. 아니, 녀석이 요청하는 거면, 내 능력이 닿는 한, 뭐든 들어줄 테다. 하여 친구 위할 줄도 아는 놈이라는 공치사까지 듬뿍 듣고 싶다. K는 내게 그런 녀석이다. 미련곰탱이일지언정.

친구여,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 자신의 안부를 확인(Si vales bene valeo)받았네만 이제부터는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주기로 한다(Do ut 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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