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다

by 김대일

깎새 점방 근처에는 24시간 돌아가는 슈퍼마켓이 있어서 새벽 출근길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는 데 요긴하다. 하루는 주전부리나 사려고 들렀었다. 으레 들고 다니는 비닐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서. 낯이 익은 젊은 사내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새벽에 가끔 들르면 어김없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어서 새벽 근무를 전담하는 알바 혹은 경영수업을 몸소 체험 중인 주인집 아들내미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슈퍼 주인일지 모른다고 어림했더랬다.

카운터에서 보면 ㄱ자로 꺾여 자리한 유제품 코너는 큰 기둥이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손님 행각이 묘연해지는 일종의 사각지대였다. 거기서 우유를 고르려는데 뒤가 영 따가웠다. 뭔가 싶어 돌아봤더니 느닷없는 손님 반응에 화들짝 놀란 그 직원이 후다닥 카운터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뭐지, 미행을 당한 듯한 이 더러운 기분은?

여전히 비닐 장바구니가 깎새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게 상황을 더 묘하게 만드는 매개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기분만 더 더러워졌다. 매장 주변을 빙빙 돌면서 밍기적거리는 행동거지가 인적 뜸한 새벽 시간을 노려 슈퍼마켓 물건을 슬쩍하는 절도범을 닮았을까. 가뜩이나 근자에 비는 물건이 여럿 생겨 감시 레이더망을 총동원하던 차였는데 심증은 가되 물증이 없다가 오늘에야 현장을 포착하게 됐다 싶어 몰래 뒤를 밟았을지 모를 일이다.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역력하면 딱 붙들어 현행범으로 곧장 넘기려고. 필요한 것만 후다닥 사고 나왔으면 될 터인데 괜히 굼떠 의심을 산 게 불찰이라고 하면 딱히 변명할 형편은 못 되겠다. 다만,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결정 장애가 거의 병적임을 그 직원한테 굳이 먼저 실토해 알아서 기기를 자청하는 게 손님 된 도리인지에 대해선 심각하게 고려해 볼 문제다.

일 분이 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진 못하지만 좀스럽게 살지도 않았다. 어디를 봐서 좀도둑 행색일까. 혹시 나이 먹어가매 인상이 점점 흉해지는 건 아닐까.

참모가 추천한 장관 후보자 얼굴을 본 링컨 대통령은 "나는 그 사람 얼굴을 좋아할 수 없군요."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이해할 수 없다며 참모가 "그는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그건 난센스입니다." 반문했다. 링컨이 대답했다. "못 생겨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 사람 얼굴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거울에 화나고 불퉁한 표정을 한 당신을 발견한다면 그건 당신 내면이 그렇게 표정으로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공자도 세간의 평판을 가르는 시점을 마흔으로 잡았다. "마흔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산다면, 그 인생은 더 볼 것이 없다.子曰,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논어 양화편)

왜 꼭 마흔이 기준이어야 하는지 그 속내야 알 길이 없으나 불혹이 링컨이나 공자 말씀에 핵심은 아닌 성싶다. 요는 그 나이 먹도록 남한테 믿음을 못 주고 얄망궂다는 평판 일색이라면 더 볼 것도 없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 아닐는지.

기대수명이 늘어났으니 예전 마흔이 오늘날 쉰 살과 방불할 것 같으면 만으로 쉰 둘 먹은 깎새는 과연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슈퍼마켓에서 절도범 의심을 받자 따끔하게 자문해 보는 깎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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