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지대가 필요한 관계

by 김대일

깎새 점방 견습하러 왔던 여자는 딱 3번 오고 발길을 끊었다. 기간으로 따지자면 3주 만에 관계가 끊겼다. 문제는 견습생이 발길을 끊은 이유다. 깎새도 견습생도 마지막 날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3주 전 목요일, 깎새는 깎새 부친 점방 탐방을 제안했다. 깎새와 비교 불가인 고수 기술을 직접 보고 느끼는 건 신출내기 입장에서도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라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여자는 반색하며 흔쾌히 수락했다. 불감청 고소원이랬다고 가까운 데 부친 점방이 있다는 정보를 자기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차마 구경가겠다는 말을 못 꺼냈는데 먼저 제안을 해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면서. 마침 부친 점방 김 군이 들렀길래 동행케 했다.

저녁 퇴근길에 긴 문자가 들어왔다. 견습생이었다. 그동안 신경 써줘서 고마웠고 자기는 굳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남 밑에서 배우기보다는 알아서 기술을 익히겠다는 결별 선언이었다. 일방적인 통고여서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감을 잡았다. 부친 밑에서 견습을 하는 조씨가 있다. 바쁜 일정을 쪼개 1:1 기술 전수를 시키는 부친이 고마워서 그는 수업료 얼마간을 내고 있다. 조씨와 그 여자는 한 조가 되어 무료 이발 봉사를 다니는 사이다. 부친을 만나고 난 뒤 여자가 조씨한테 연락을 했고 수업료가 화젯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 직후에 깎새한테로 문자가 날아왔고.

여자 문자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깎새가 답장을 보냈다. 여자 의견을 십분 존중하면서도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어서 이런 구절을 덧붙였다.

- 나이 든 남자가 뒤늦게 기술을 배워 현장 실습을 나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여자쌤들에 비해 받아 주는 데가 거의 없으니까요. 쌤과 비교해서도 여실히 드러나잖습니까. 쌤은 여기저기 오라는 데가 많지만 수업료를 지불해서라도 부친 밑에서 기술을 배우려고 아등바등하는 조쌤을 보면 말입니다.

여자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한 성싶었다. 부친한테 보낸 까닭이 조씨처럼 수업료 지불하고 기술을 배우라는 강권(?)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비친 빌미를 제공한 깎새 책임도 없지 않겠다. 그럼에도 더 좋은 기술 원없이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밖에는 받아들이지 못한 그 여자가 몹시 서운한 깎새다. 한편으로 혹시 그 여자에게 지상가상없이 다 퍼주려던 헤픈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면 허릅숭이도 이런 허릅숭이가 없는 것이다. 김언수 단편소설 「잽」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 링이건 세상이건 안전한 공간은 단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타인과 맺는 관계를 죄다 겨루기 시합인 양 대결 구도로 볼 건 아니지만 친소를 떠나 적당한 거리를 두는 건 꼭 필요하다. 마치 권투 시합 중에 잽을 날리듯 말이다. 잽을 날린 리치만큼 사이(그래서 인간人間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가 생긴다. 일종의 완충지대다.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야 상대방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고 냉철하게 자신을 다잡을 수 있다. 그래야 나중에 둘 사이가 허물이 없어지든 개싸움이 일어나든 지켜야 할 선을 고수하는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해 정신적 승산을 보장받을 수 있다.

완충지대처럼 사이를 둔다는 것, 살짝 재수없어 보이긴 하지만 나름 효용적이다. 뭐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인데 이번 게임에서는 깎새가 완패했다. 더불어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고종석 어록을 잠시 잊어버린 게 패착이었다.


- 나는 사람을 만나 쉽게 말을 트지 않는다. 말을 튼다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또 한 사람의 타인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고 나는 그것이 불편하다. (고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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