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속젓으로 감바스를

by 김대일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는 새우와 마늘을 주 재료로 하는 스페인 요리이다. 스페인어 감바스는 '새우gambas'를, 아히요는 '마늘ajillo'을 뜻하며 al은 요리 이름에서 '~풍으로' 라는 뜻이란다. 고로 감바스 알 아히요는 새우와 마늘 두 재료만 가지고도 해먹을 수 있는 요리라는 소린데.

부산에 터 잡은 지 20년이 지났어도 충청북도 내륙 출신이라 비리고 쿰쿰한 갯것에는 여전히 손이 잘 안 가는 마누라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달 전에 갈치속젓을 사왔다. 고깃집에서 삼겹살 구워 찍어 먹은 적은 있지만 집에서 끼니 때마다 삼겹살 구워 먹을 건 아니라서 어디다 쓸 요량인지 그 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누라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 양배추쌈에는 갈치속젓이 찰떡이지. 먹을 줄 몰라?

어럽쇼!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유분수지, 데쳐 먹은 양배추, 찍어 먹은 갈치속젓만 해도 몇 곱절은 더 될 갯사람 앞에서 잘난 척 하기는. 아무튼 사온 김에 한 이틀 바짝 쌈 싸 드신 뒤로 갈치속젓은 이내 냉장고 구석탱이로 밀려나 뒷방 늙은이 신세를 못 면하게 됐다. 가끔 입맛 없어 물에 밥 말아 먹을라치면 그걸 꺼내 놓는데 변심한 마누라가 냄새 비리다고 타박을 한다. 자기가 사놓고선 어쩌라고!

냉장고 문을 열 적마다 갈치속젓이 깎새한테 절규하는 듯하다. 제발 자기를 써먹어 달라고. 그러면 괜히 심각해지는 깎새다. 어떻게 해야 잘 써먹었단 소릴 들을까 하고. 갈치속젓을 불에 달구면 고소함에 더해진다. 그걸 이용한 요리를 해먹으면 어떨까. 이왕 갈치속젓으로 하는 거니 육류 대신 갯것을 주재료해서 말이지.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불쑥 떠오른 게 바로 감바스, 새우다.

발상이 엉뚱할지언정 해 볼 만하다. 일단 감바스 알 아히요 레시피를 정석으로 하되 구미에 맞게 변용할 작정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감바스 알 아히요를 만드는 TV 프로에서 봤는데 마늘은 다진마늘을 넣더라고. 근데 통마늘은 별론가? 어떤 게 더 맛이 좋을지 모르겠으면 두 가지 다 넣어볼 테다. 또, 페퍼론치노라는 서양 고추 말고 처가집에서 공수한 충북 음성 청결 고춧가루를 넣으리라. 맵싸한 맛이 입안에 감돌 게 틀림없다. 자, 드디어 대망의 갈치속젓! 올리브오일 범벅인 감바스에 갈치속젓을 투하하는 거다. 그 다음에 갈치속젓 특유의 고소함이 잔뜩 스며들게 한소끔 끓여 낸다. 참, 미리 삶아 둔 소면을 대기시켜 놓고 이른바 '오일 파스타'도 곁들일 테다.

쉬는 화요일 만들어 먹어 본 뒤 냉정하게 평가하겠다. 소탈하다 못해 구리기까지 한 깎새 입맛에 비춰 보건대 딱히 별쭝맞을 턱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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