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낌새
강세화
실없다 하면서도 마음이 아직 여려
잔 부끄럼 남은 사랑을 돌아보듯이
거제군 동부면 해안길을 따라 달리며
한 등 너머 바다를 달리고
또 한 등 너머 다른 바다를 보고 나서,
소중한 비밀 하나는 남몰래 지키면서
목젖에 차 오는 것을 눌러두고 지내기에는
아무래도 내 속이 너무 엷지 않은가
늦은 밤 돌아서며 손을 들어 보이는
그런 낌새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월에도 동백꽃은 입술을 쫑긋거리고,
밤마다 저편에서 닿아오는 불빛에는
맘을 적시는 인기척이 살아 있어
아, 거기도 사람이 있었구나 싶으니
내가 꼭 누구를 염두에 두고 느끼던
그리움의 연유(緣由)가 이런 것이 아닌가
(어떤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나 일이 되어 가는 야릇한 분위기를 '낌새'라고 하고 '낌새채다'는 그걸 알아채는 움직임을 말한다.
계절이 바뀌는 낌새는 새벽 공기를 맡으면 알아챌 수 있다. 요즘처럼 가뿐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으면 봄은 이미 바짝 다가섰음을 직감한다. 국내 최고 기업 회장이 유력한 야당 대표를 영접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젠 되얏다!"라고 불쑥 튀어나온 것도 얼마 남지 않은 낭보르 낌새챘음이라.
앞으로는 제발 참담한 시국을 놓고 낌새 맡는 짓 좀 그만하고 시 속에 숨은 '그리운 낌새'나 알아채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