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궁德宮 이발소'
깎새가 구상하는 소설 제목. 하지만 진척은 1도 없다. '덕이 무궁무진한 궁궐같은 이발소'라는 그럴싸하지만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이름만 지어 놓았다 뿐 난잡한 시놉시스조차 없다. 개업한 이래 깎새가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일단 개연성은 담보할 테니 황당무계하지는 않으리라 믿지만 결국 글감을 잘 꾸밀 줄 아는 글맛에 성패가 달렸다면 그렇게까지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깎새로서는 손도 못 대는 게 당연한 노릇이다. 그저 이발소를 배경으로 하거나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이 좌충우돌하는 유쾌한 소동극을 담은 글줄이나 줄창 읽어댈 뿐.
오쿠다 히데오가 쓴 『무코다 이발소』(김난주 옮김, 북로드, 2017)가 그 중심에 있다. 아류가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김호연의 『망원동 브라더스』(나무옆의자, 2013)나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대원씨아이, 2008)은 필시 영감을 자극한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등장시켜 그들의 희노애락을 담담하면서도 슴슴하게 그려내는 『심야식당』은 깎새가 특히 베끼고 싶은 구조다. 거기에 히가시노 게이고 식 트릭과 가슴뭉클한 반전 따위를 양념 격으로 집어넣어 군데군데 소소한 재미까지 배치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깎새 메모장엔 점방을 찾은 손님들이 너저분하게 떠들고 간 수다를 듣다가 잽싸게 끼적거린 메모만 수백 개나 된다. 상상력 부재를 타고났으니 그거라도 밑천 삼겠다는 일념으로 매달린 결과다. 덕분에 진척이 1도 없지만 마음만은 든든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넉넉해지는 글감만 봐도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인 양 풍요롭다.
다만 그것들을 언제 써먹을지는 난망하다. 아침에 쓴 글을 저녁에 읽어 보면 몹시 부끄럽다. 역시 글발은 천부적 재능인지라 아무리 용을 써봤자 안 되는 건 안 된다. 요새는 차라리 장르를 바꿔볼까 고민 중이다. 깜냥도 안 되는 소설 대신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소재로 가볍게 쓰는 감성적,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특성을 지닌다는 신변잡기身邊雜記, 즉 미셀러니에 집중하되 살짝살짝 허구를 가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야 만리장성을 쌓지만 그마저도 착수는 요원하다.
결코 아니라고 마음 다잡으면서도 끝내 부인할 수 없는 건,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