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역 부근에 타코야끼 맥주집이 있다. 8알에 3천 원인 타코야끼와 500cc 생맥주 2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라 생각날 때면 가끔 들른다. 불만이 있다면 생맥주잔이다. 거기 생맥주잔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두루미가 여우한테 대접한 호리병 같이 목이 좁고 긴 형태다. 모름지기 생맥주는 뭉툭한 조끼에 담아야 제맛이라는 레트로 감성에 편파적인 나는 영락없는 구닥다리이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 먹은 걸 어쩌랴.
<불잉걸>(생맥주집이니 독일어인 줄 알았는데 웬걸,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란 순우리말이더라구. 운치있어), <뮌헨>은 대학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호프집 이름이다. 학교 정문 옆 반지하에 넓다란 연회석이 특색이었던 또 다른 호프집은 독일식 지명이었던 거 외엔 상호가 기억나질 않는다. 하여튼 생맥주 500cc 값이 요즘의 1/5 정도밖에 안 할 때였던 1990년대 초에는 호주머니에 돈이 좀 실렸거나 누구 생일이다 싶으면 이리저리 따질 것 없이 호프집으로 직행하곤 했다. 젊은 치기에 요강만 한 3,000cc 피처를 누가누가 빨리 원샷하나 내기 거는 객기를 부리는가 하면 가게 한 켠 뮤직박스 DJ한테 부탁해 두남둔 이를 위한 신청곡을 틀게 한 뒤 애정 고백이 이어지면 너나할 거 없이 홀에서 환호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분위기에 취한 호프집 사장님은 구운 오징어니 감자튀김 따위 서비스 안주를 남발하고. 그 시절 호프집은 낭만이 넘치는 한바탕 축제의 장이었고 살면서 맛 봤던 생맥주 중에서 제일로 맛좋고 달콤하지 않았나 싶다.
모든 면에서 풍요로워진 요즘보다 오히려 30년 전 호프집 안주가 양으로나 맛이 훨씬 푸짐했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호프집 단골 메뉴인 돈까스만 놓고 봐도 요즘 TV에서 소개되는 맛집의 왕돈까스보다 크기면 크기, 두께면으로나 비교가 안 되게 월등했다. 기마이 좋은 호프집 사장님이 서비스로 내놓는 감자튀김, 오징어는 또 어떻고. 생색을 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듯이 접시에 가득 튀기고 구워 나오는 것들을 요즘 시세로 치면 만만찮을 거이다. 잔칫상처럼 안주가 테이블에 한 가득이면 술도 지상가상없이 들어갔다. 장사치 밑지는 장사 한다는 소릴 그때는 믿었지만 지금은 뻔한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건 나이 들면서 내가 영악해진 까닭일까. 그 뿐일까.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내가 누리는 행복의 척도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라면 뭘 먹고 마시더라도 예전같은 느낌, 풍미를 잘 못 느끼는 나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가늘고 긴 잔을 들어 생맥주 한 모금에 타코야끼 한 알을 씹어대면서 내 스무 살 적의 취흥을 반추시키려고 애쓰지만, 유난히 쓴 생맥주만 자꾸 목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