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200)

by 김대일

굴절

이승은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 속 입니까?



(절창인 시조다. 신영복 선생이 쓴 글과 자꾸 겹쳐진다.


숱한 사연과 곡절로 점철된 내밀한 인생을 모른 채 단 하나의 상처에만 렌즈를 고정하여 줄곧 국부局部만을 확대하는 춘화적春畫的 발상이 어안魚眼처럼 우리를 왜곡하지만 수많은 봉별逢別을 담담히 겪어 오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묵직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견실함을 신뢰하며,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함을 감사하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다시 만나지 말자며 묵은 사람이 떠나고나면 자기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체험을 등에 지고 새 사람이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의 친구들이 죽어서,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귀었노라.

용서를 바란다."

모블랑의 시는 차라리 질긴 슬픔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굴절을 극복하는 방법은 겸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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