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서

by 김대일

나이 먹을수록 잘 안 하면서 못하는 짓 중에는 노래 부르기가 있다. 노래란 자고로 기쁘든 슬프든 흥이란 게 돋아야 불러지는 법인데 흥 돋을 만한 일이랄 게 없는 무덤덤한 일상이 이어지다 보니 언감생심이라. 또한 감정이 즉각적이고도 자연스럽게 표출되던 소싯적과는 다르게 안으로 품어 내색하지 않는 게 어른의 품격이라는 돼먹잖은 구시대적 미망에 사로잡힌 까닭도 없진 않다. 게다가 들어주는 이가 있어야 노래 부를 맛이 생기건만 마땅히 들어줄 만한 청중이 없다는 실존적 고민까지 더하니 제풀에 담을 쌓을밖에.

아무튼 깎새 역시 희로애락이 수시로 일렁이는 사람 새끼인지라 가끔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가 없지 않고 내처 노래방에 처박혀 고래고래 불러제끼고픈 노래가 또한 없지 않다. 이른바 십팔번이라고 불리는 레퍼토리 중에는, 가능성이 단 1도 없지만서도 원래 불렀던 가수와 똑같이 부르고 싶은, 그 가수가 부른 방식이며 딕션이며 하다 못해 노래 부를 때 습관처럼 따라나오는 제스처까지 따라하고 싶어 미치는 노래가 2곡 있다. 바로 자우림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와 윤미래가 부른 <시간이 흐른 뒤As time goes by>. 공교롭게도 두 곡 다 여자 가수가 불렀고 우리 시대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들이라서 당연히 똑같을 가능성이 단 1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처럼 부르고 싶다. 그렇게 불러야 제맛이 나는 노래니까.

<봄날은 간다>는 시인들더러 '아름다운 노랫말'을 고르라고 하면 단골로 빠지지 않는 노래이자 사람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마음에 들게 완창을 해본 적 없어서 늘 목마른 노래다. 김윤아처럼 절절하게 부르고 싶지만 아마도 끝내 닿지 않을 노래, 그래서 더 갈구하는 노래다. 노랫말처럼 봄은 오고 꽃은 피지만 또 봄날은 무심히도 가고 꽃잎은 바람에 질 테지.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지만 머물 수 없이 떠나 버리는 마음 아픈 추억들처럼 그 무심함 때문에 남들 꽃구경 갈 때 방구석에 처박혀 청승맞게 불러제낄 노래. 듣고 부르고 듣고 부르고 듣고 부르기를 열댓 번 거듭하다 보면 견딜 만해지겠지. 봄날이, 비록, 가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As time goes by>를 듣고 있노라면 R&B 장르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도 리듬을 탄다는 게 뭔지는 금세 알아채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윤미래라서 특히 귀에 바로 꽂히는 복을 누리는 건데 꼭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빙판 위를 매끄럽게 활주하듯 목소리가 리듬 위에서 춤을 추는 착각이 일 정도다. 게다가 격한 감정을 억제해 아픔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노래 속 화자를 가슴 저미게 표현한 윤미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절창이다.

봄이라서 청승 한 번 떨어봤다.



https://youtube.com/watch?v=PH_oci61TYA&si=XNOPNZ90HL-6HOFx


https://www.youtube.com/watch?v=KyKiZtL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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