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 근처 시장 건어물 가게 들러 북어채 5천 원어치를 산다. 자주 들르는 편이라 주인 이모가 제법 친근한 척 군다. 북어채를 샀다고 북엇국으로 변신하진 않는다. 입 심심할 때 씹고 뜯고 맛보며 즐기려는 군임석일 뿐이다.
명태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결코 질리지 않는 먹거리다. 당장 엊그제 쉬는 화요일만 해도 막걸리 두 통 안줏감으로 택한 건 동네 반찬가게 들러 산 명태조림이다. 혼술을 끝내고 입가심으로 들이켠 건 마누라가 끓여 놓은 북엇국이었고.
돌이켜보면 깎새 인생 장면장면마다 명태가 빠지질 않는다. 손맛이 남달랐던 모친이 간장에 조려 내놓는 명태조림은 깎새 어릴 적 최애 반찬이었다. 주머니 사정 빈약한 대학 시절 선택의 여지가 없던 단골 주점 레퍼토리는 막걸리 두 통에 사이다 한 병, 그리고 노가리였다. 전역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시작된 서울 직장생활, 뿌리 박고 살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는 부적응상태가 숫제 불치가 된 청년 깎새가 일부러 출장 핑계 대고 떠난 곳은 당시 지하철 4호선 종점이었던 안산역. 행선지가 거기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조미료와 고춧가루가 범벅인 생태탕으로 점심을 때우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각박한 대도시를 탈출하지 않고는 지레 말라죽을 성싶어 그저 그런 맛인데도 꾸역꾸역 생태탕 먹으러 안산까지 간 깎새. 그러고 보면 깎새가 명태를 먹은 게 아니고 명태가 깎새를 위로한 셈이다.
요즘은 귀하다고 붙여진 금태. 예전처럼 쉽게 구하기 힘든 귀물이 되었다만 명태라서 지갑 여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은 깎새. 아니나다를까 콜라겐 덩어리라고 침을 튀기며 호객하는 건어물가게 이모한테 홀딱 넘어가고 만 깎새는 명태껍질튀각을 오물오물 씹으며 이 글을 쓰고 자빠졌다.
명태
양명문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허허허
명태 허허허 명태라고 음 허허허허 쯔쯔쯔
이 세상에 남아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