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거미와 함께

by 김대일

계절이 여름으로 향하면서 점방 후미진 구석구석은 거미집으로 점령당한다. 바야흐로 거미가 활개를 치는 시절이 왔고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깎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깎새는 거미성애자다. 방사형 거미집을 짓고 거기에 걸린 먹잇감을 거미줄로 돌돌 마는 거미를 보면서 오르가슴에 이르는 깎새는 아마도 자신한테는 별로 없는 치열한 생존 본능을 거미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게 틀림없다.

거미란 녀석한테 본격적으로 애정을 쏟은 건 5년 전 남 밑에서 커트점 알바하던 무렵이었다. 그 점방 서서 소변 보는 남자 화장실에 거미가 살았다. 커트점 원장이 여자인지라 남자 화장실에 신경이 덜 간 틈을 타 녀석은 유리가 깨진 창틀에 제법 널찍한 거미집을 짓고 살았다. 그 녀석 고대광실에서 좀 떨어진 귀퉁이에는 녀석보다 덩치가 한참 밀리는 다른 거미 한 마리가 역시 거미집을 짓고 살았지만 작고 성글었다. 꼭 새끼한테 집 짓는 법을 가르치는 아비인 양 둘은 공생했다.

출근하자마자 거미집부터 찾았었다. "밤새 안녕?" 안부 물으려 한달음에 달려갔건만 어떨 땐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조차 안 내밀던 녀석이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엔 거미집 한 가운데에 떠억하니 군림해 있었다. 공사가 다망한 줄은 알겠는데 너무 비싸게 구는 녀석한테 서운해하곤 했다. 그럼에도 당시 품값 받고 일하던 깎새나 점방 화장실에서 곁방살림하듯 거미집 짓고 사는 녀석이나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는 어슷비슷했던지라 더 애틋한 건 차라리 동지애였으리라. 오줌 누다 말고 이런 내 마음 너는 알기나 하냐며 깎새가 중얼거리면 거미란 녀석 잠자코 듣고만 있다. 그 묵묵함까지 마음에 들어 뭐라도 건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나간 물아일체였을까.

하루는 손님 머리를 감기고 주변을 정리하다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려 손으로 툭 쳤는데 나자빠졌다. 꿈틀거리는 걸 손바닥으로 압살시키려다 집어서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물것을 거미줄에 갖다 대니 그대로 달라붙었다. 거미집이 출렁 요동을 치자 녀석이 놀란 듯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이내 먹잇감인 줄 알아보고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거미줄로 물레 돌리듯 칭칭 감았다. 제 덩치만한 걸 득템했으니 그날은 폭식하는 날이었으리라. 뿌듯함이란 이런 감정이로구나!

여기서 잠깐, 먹잇감을 거미줄에 던져 준 짓이 비단 깎새만이 벌인 가학적인 행위가 아님을, 즉 지극히 인간적인 이바지임을 문헌 기록에서 최근에 확인한 바 그 반가움은 이루 말로 표현을 못 한다. 거미 먹잇감이 모기 대신 파리라는 차이만 있을 뿐.


화장실 천장에는 여기저기에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삽니다. 거미는 깔끔하고 의심 많은 곤충이었습니다. 녀석은 죽은 파리는 잘 먹지 않는데, 살아 있는 파리라 해도 사람이 보고 있으면 결코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파리를 잡아서 거미줄에 걸어줄 때, 파리가 아주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 잡습니다. 이것은 약간의 기술을 요하는 것입니다. 또한 잡은 파리를 거미줄이 찢어지지 않도록 걸어주는 것도 어려운 동작입니다. 나는 몇 번의 반복을 통해 기술자가 된 것입니다. ···(중략)··· 꽃을 가꾸고 거미를 관찰하고 개미들의 행진을 보면서 마음의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도소 생활은 아주 멋진 성공작이라고 자찬하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자기 합리화도 억지 춘향의 해석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느꼈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DJ도 산 먹잇감을 거미한테 바쳤는데 일개 범부인 깎새가 그러지 말란 법 없으니 거미성애자가 별종은 아니란 게 증명되었다. 점방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무료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거미란 녀석과 벗하는 일상이라면 설령 마이크로할지언정 스펙터클을 기대해도 좋을 게다. 올 여름도 그렇게 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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