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

by 김대일

커트, 고급 염색에 두피마사지까지 주문해 매상 증대에 혁혁한 공을 올린 단골 손님을 배웅하는 깎새 목소리엔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안녕히 가세요!"

지나가던 한 행인이 그런 깎새가 거슬렸는지 느닷없이 쌍욕을 왕창 퍼부었다. 황당한 깎새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단골은 단골대로 가던 걸음을 멈춘 채 깎새와 그 행인을 갈마보며 어찌 된 영문인지 따져 보려는 눈치였지만 인과라는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더 어이없기는 그 다음. 문제의 행인은 자기 눈에 띄는 누구든지 깎새한테 퍼붓던 쌍욕을 무차별적으로 재현하는 기행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해인이 떠난 자리를 이어 받는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까지는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깎새 점방 앞에 딱 멈춰 서서는 그길로 대성통곡을 하니 난감해진다. 부모가 죽었어도 그렇게까지 구슬프진 않을 텐데 오래전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한 맺힌 처녀귀신의 통곡 따윈 말석에도 못 낄 축이면 말 다 한 셈이다. 분출하지 않으면 속 터져 죽을 사연 때문이겠거니 이해하려 해도 제 점방 앞에서 10분 넘게 하염없이 울어제끼면 곤란을 넘어 혐오스러워진다.

한바탕 울음바다를 연출한 멀쩡한 여자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면상 멀끔한 중년 남자가 그 자리를 꿰찬다. 헌데 그 걸음걸이가 영 불안해 뵌다 대낮에. 커트 작업하는 내내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질 않아서 설마설마하며 밖을 내다봤더니 아니나다를까 그 중년 남자 깎새 점방 옆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의식을 잃었다면 곧장 119를 불렀을 테지만 축 늘어져 혼자 흥얼흥얼거리는데다 스마트폰을 자꾸 깨작거리는 걸로 봐서는 구급대원 헛걸음 시킬 게 뻔해 관둔다. 정신 나간 상태로 뭘하려는 건지 엿보니 누군가에게 기별을 넣으려는 몸부림인 성싶은데 뜻대로 안 되는지 욕 섞인 투정만 되풀이할 뿐이다. 주정뱅이라는 결론이 나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딸이 분명해 뵈는 젊은 처자가 나타나서 중년 남자를 부축해 간다. 늘상 있는 일인 양 익숙하게.

이발의자 앞거울에 비친 자기와 직면하자 깎새는 불현듯 연거푸 벌어진 병리적 현상을 복기했고 급기야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잘 짜여진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를 본 거야.'

작가의 이전글올 여름도 거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