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출근 전 의식 치르듯 깎새가 꼭 하는 일이 있다. 가스 밸브는 잠궜는지, 가스레인지 화력 조절 손잡이가 '꺼짐'에 위치해 있는지, 냉장고 문은 잘 닫혔는지,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물은 새지 않는지를 직접 확인한다. 재차, 삼차 목도目睹하는 것도 모자라서 스마트폰 무음 카메라를 켜 상태를 일일이 찍어 놓은 다음에야 안심하고 출근할 수가 있다. 무음 카메라여야만 하는 건 셔터 소음 때문에 가족 새벽 단잠을 방해할까 두려워서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보기에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는 아비의 기행奇行을 굳이 드러내고 싶진 않아서가 더 큰 까닭이겠다. 평소에 가스 밸브서껀 수도꼭지를 공연히 자주 만지작거려 작동 불능이 그 연한에 비해 훨씬 빨리 당겨지곤 해 특히 마누라한테 핀잔을 도맡아 듣곤 하는데 만약 신새벽에까지 미친 놈처럼 카메라를 찍어 대는 작태가 발각된다면 아마 그길로 정신병원 직행일 게 뻔하다. 그렇게 위험 아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깎새는 출근 전 의식을 그만둘 마음이 추호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병적인 줄 안다. 결벽증, 강박증, 분열증 뭘 갖다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출근 의식만 있으면 서운한 법이라 퇴근도 그냥 하는 법이 없는 깎새. 전기 차단기는 내렸는지, 점방 전기가 집중되는 분전반 차단기 버튼만 내리면 끝인데도 냉온풍기, 온수 보일러, 회전간판을 또 재차 삼차 확인하고, 뒤꼍 문을 제대로 잠궜는지 세면장 수도꼭지 역시 단단히 잠궜는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역시 사진까지 찍어둔다. 확인 절차는 순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뤄지고 과정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무결해야 점방 문을 닫고 겨우 퇴근한다. 어두컴컴한 점방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혼자 동분서주하는 깎새를 목격한다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겠다.
이러는 자신이 괴이쩍지 않으면 정말 이상하고 미친 놈이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는 없다. 아니, 결코 그만두지 않을 테다. 아마 뇌리 속에 단단히 박힌 트라우마적 상황이 깎새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다 못해 현상을 조종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명료하게 규정할 수가 없다. 태어나 여지껏 저지른 결정적 실수와 실패가 켜켜이 쌓이다가 세월이 거듭되면서 그 구체성은 모호해지고 트라우마라는 정신적 생채기로만 남아 판단력을 통제하는 거라는 추측 외엔. 하지만 깎새는 뜻밖에도 일상 생활에 불편을 야기하는 기행이 결코 치명적 결함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제 삶을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수긍해한다. 이런 긍정적 반응은 기실 변태적이긴 하나 이른바 '외상 후 성장'과 통하는 바가 있어 음미해볼 구석이 있다.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이 언급한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은 적절한 참조점이 된다. 외상 후 성장이란 트라우마적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며 좋은 삶을 살고자 하고, 좋은 사회로 전환하고자 하는 지향이다. 그런데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의 시간을 슬기롭게 수용하지 못한다면, 신중년 및 노년은 '허무함, 지루함, 비루함'의 3종 세트에 묶여 지내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삶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탄생할 수 없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선배 시민'의 새로운 서사>, 경향신문, 2021. 08.05 에서)
남보다 상대적으로 실수가 많았고 실패도 잦았으며 그로 인한 상실이 컸던 깎새로서는 곡절과 부침 덕에 자기를 꿰뚫어 보는 냉철함을 얻게 된다. 그건 바로,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오만방자함이 청춘의 보도寶刀인 양 세상사를 오롯이 제 손바닥 안에 두고 주무르던 시절의 후과는 막대했다. 오류투성이 인간이란 동물은 실수하기 마련이라서 완전무결이니 완벽이란 건 절대 불가능한 신의 영역이건만 감히 스스로를 과신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다 추락한 이카로스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다. 분명 자기 통제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고 자만하지만 여기저기서 틈입하는 실수와 패착은 기실 통제 범위 밖이다. 그걸 알아챈다면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깎새도 물론 잘 안다. 가스 밸브는 애시당초 잠궜고 가스레인지 화력 조절 손잡이는 분명 '꺼짐'에 뒀으며, 냉장고가 밀리도록 문을 꽉 닫았고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고 또 봤다. 또 점방 전기 차단기 메인 버튼을 내리지 않으면 퇴근할 수 없고 냉온풍기, 온수 보일러, 회전간판은 모두 당연히 꺼져 있다. 좀도둑 예방 차원에서 점방 정문만큼 튼튼하게 뒤꼍 문은 잠갔고 세면장 수도꼭지 역시 집 화장실 수도꼭지처럼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 또 봤다. 그럼에도 깎새는 자문한다.
'너는 너를 믿니?'
자신을 완전하게 믿지 않아 벌어지는 기행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불완전해 빚어질 지 모를 불상사로 인해 주변인(가족이나 같은 아파트 동 주민, 건물주나 같은 건물 세입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걸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라면 남을 배려하는 태도로써 나쁘지 않다고 자평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완벽하지 못한 자신이 미덥지 못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돌아보는 자성의 계기라면 그 가치는 빛을 발할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라서 병적인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