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작가는 『말들의 풍경』이란 저서에서 자기가 꼽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
마감 직전에 주제를 정하고 나서 잠시 궁리한 끝에, 낱말 열 개를 순식간에 고른 까닭에 부당하게 열 개에 오르지 못한 것이 여럿 떠올랐다며 '그윽하다'를 보태겠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고종석,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2007, 149쪽) 덧붙이는 글에서는 시인 김수영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우리말 열 개도 소개했는데,
시인 김수영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 아무래도 시인이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 위주인데 아버지가 상인이라 어려서부터 서울 아래대의 장사꾼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는 시인의 고백이다.(같은 책, 150쪽)
깎새더러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라고 하면, 아직 못 정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여지껏 모아 놓은 희귀하고도 감칠맛 넘치는 토착어들이 수두룩하지만 너무 많아서 탈이다. 거기에 심각한 결정 장애를 앓고 있는 고질도 한몫 하고. 그럼에도 꼭 고르라고 하면 아마 열 개 중 서너 개쯤 부사로 채울 공산이 크다. 사과 부사보다 더 사랑하다 보니 능히 그러고도 남는다.
글을 끼적거릴 때면 부사가 주는 효용이 대단하다. 부사 하나가 한 문장 전부를 에워쌀 수 있다. 에워쌈이란 곧 입김인데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바를 알토란 같은 부사 하나가 일기당천할 수 있다. 꼭 장판파를 혼자 지키는 장비마냥. 비단 문장뿐이랴. 시인이 애면글면 머리 짜서 지은 시 한 수가 기껏 부사 하나로 간파당하기까지 한다.
쫄딱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담너머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잠깐 사이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반갑고 당당할 줄이야
깎새가 이러니 부사를 아니 사랑할 수가 없다. 처음으로 돌아와, 깎새더러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으라고 굳이 강요한다면 부사 서너 개를, 이를테면 이런 것들로 필히 넣을 작정이다.
* 김은 에멜무지로 갈았던 김칫거리가 때를 잘 타 이달은 벌이가 괜찮았다. (이문구)
(에멜무지로: 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 / 결과를 바라지 아니하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하는 모양)
* 농군들은 우수, 경칩, 춘분, 청명-이렇게 풀풀 날아들어도 봄보리 때가 어느 땐지도 모르고 엄벙뗑 보내다가 떡 한식이 닥쳐야만 비로소, “어이쿠!” 하는 것이 보통이다.(이무영)
(엄벙뗑: 어떤 상황을 얼김에 슬쩍 넘기는 모양)
* 상경할 때마다 구메구메 양식이랑 잡곡이랑 먹을 걸 날랐다.(박완서)
(구메구메: 남모르게 틈틈이)
후보에 유력하게 오르고도 남을 부사이지만 이들을 위협할 호적수 또한 차고 넘친다. 하여 아마 깎새는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죽을 때까지 못 고를 거다. 자기를 뽑아주지 않아 원성이 대단할 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