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by 김대일

내 글씨를 보고 호방하고 예스러워 어르신 필체라며 부러워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나는 내 글씨체가 늘 불만이다. 자간과 행간의 균형이 맞지 않아 삐뚤빼뚤 위태롭게 난립한 꼬락서니가 꼭 요점만 빼먹고 중언부언하는 나하고 똑 닮아서다. 또 가리산지리산하는 초성 ‘ㅅ’이나 받침 ‘ㅆ’, ‘ㄹ’ 모양은 그걸 쓴 사람의 잔망스런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해 민망하기 짝이 없다. 흘려 쓰는 버릇이 워낙 오래 밴 탓에 정자 쓰기를 더 어려워하는 꼴은 또 어떻고. 대서소가 과거의 유물이 된 지 오랜데 이제와서 교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펜대 굴릴 일이 생기면 그것도 일이라고 애가 무지 쓰이는 건 어쩌지를 못하겠더라.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손으로 글자를 써서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구태의연한 짓인지는 잘 안다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생각의 파편들을 손끝에 온 정성을 기울여 정리하는 작업이야말로 나를 온전히 정돈시키는 정갈한 의식이라는 거다.

2017년 2월쯤에 교육부에서 내놓은 초등 1~2학년 교육과정 중 뜻밖의 내용 때문에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연필 잡기의 중요성을 절감해 아예 ‘한글기초 교육은 연필 잡기 → 자음 → 모음…’이라고 교육 과정으로 규정했다. 당시 한 일간지는 교육부 발표를 두둔하는 칼럼을 써서 글씨 쓰기와 같은 손동작이 뇌와 정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뇌의 두정엽에 있는 운동 중추의 30%가 손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단적인 예로 젓가락을 사용하면 30여개의 관절과 50여개의 근육이 뇌신경을 자극해서 지능 촉진에 도움을 준다는 논문도 있다. 연필 잡기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글씨 쓰기 자세가 건강을 해친다.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글씨를 쓰면 근시의 위험이 있으며, 잘못된 자세가 유지되어 척추측만증과 어깨통증 등의 질병을 앓게 된다. 연필 잡기가 안되면 작문 실력도 떨어진다. 글씨 쓰기를 기피하면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올 리도 없다. 글을 잘 써야 생각도 깊어지고, 관찰력도 발달한다는 논문도 있다.(경향신문 <여적>, 2017.02.21.에서)​

짊어지고 다니는 백팩 속에는 펜 여남은 자루를 꾸역꾸역 담은 필통이 가방 속 제왕인 양 한 자리를 꼭 차지하고 있다. 길을 걸어가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문득 메모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금방 꺼내 메모지에 휘갈기는 데는 필기구만 한 게 없긴 하다. 물론 수정과 번복, 소거가 'Delete' 키 하나로 단박에 이뤄지는 스마트폰, PC의 기능이 편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하얀 백지 위에 썼다가 지우고 그 밑에 다시 끄적이면서 전개해 나가는 생각의 점층은 은근히 유익하기도 하거니와 아날로그라서 느끼는 묘한 성취감 같은 게 중독적이어서 쉽사리 펜을 버릴 수가 없다. 위에 소개한 칼럼은 '몽당연필이 가장 좋은 기억력보다 더 낫다'라는 서양 속담으로 끝을 맺는데 대단히 함축적이다. 하여 펜은 내가 지니고 다니는 일용품 중에서도 편애하는 측근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글씨 쓰는 방법, 거창하게 말해 서도書道를 철학적 문제로 확장시킨 고故 신영복 선생의 말씀을 옮겨 볼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읍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巧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美’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만약 필재가 뛰어난 사람이 그 위에 혼신의 노력으로 꾸준히 쓴다면 이는 흡사 여의봉 휘두르는 손오공처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관념적으로나 상정될 수 있을 뿐, 필재가 있는 사람은 역시 오리새끼 물로 가듯이 손재주에 탐닉하기 마련이라 하겠읍니다.

결국 서도書道는 그 성격상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를 연마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우기 글씨의 훌륭함이란 글자의 자획字劃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먹墨 속에 갈아 넣은 정성의 양量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생각됩니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143~144쪽)

선생은 글씨 연마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이어서 설파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視角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捷徑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旣存과 권부權富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 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같은 책, 144쪽)

스마트폰 하나면 만사형통인데 굳이 수기로 애써 안부나 근황을 밝히는 수고가 객기로 비춰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액정 화면에 떼지어 웅성대는 글자 덩어리들에서 이기利器의 냉정함이 사무쳐 유난히 께름칙한 것도 요즘이다. 볼펜 똥을 닦아 가며 꾹꾹 눌러 쓴 손편지를 바야흐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 가득 차 있는 가을에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고 싶다. 혹 '당신의 글씨에서 사람 냄새가 납니다'라는 답장이라도 올라치면 나는 미친듯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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