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산을 깎아서 건물을 올리는 통에 대운동장이 산중턱에 걸터앉아 있다. 대운동장 바로 아래로 학생회관이, 학생회관 아래로 화학관이, 화학관 아래로 하드코트가 여러 개 구비되어 있는 테니스장이 위용을 자랑했다. 교내 땅이란 땅에다 새 건물 짓는 걸 지상 최대 임무로 착각한 탐욕스런 건설업자를 닮은 전직 대학 총장들 눈에는 테니스장이 유휴지로밖엔 안 보일 게 뻔해 예전 모습 그대로일지는 무척 회의적인데 오늘 얘기는 그 테니스장에서 비롯한다.
테니스장 한가운데에는 마치 공항 관제탑처럼 3층 높이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테니스를 칠 줄 몰라 그 건물의 용도가 뭔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골프장 클럽하우스 같은 곳이라고 하기엔 조붓하고 옷장 같은 걸 본 적 없어 탈의실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그 곳은 교내에서 대운동장을 위시해 해발 높은 건물들이 다 그렇듯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면 인적이 딱 끊겨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내곤 했다. 은밀할수록 대담해지는 아베크족의 야간 데이트 장소라면 모를까 부러 그 높고 먼 곳까지 오밤중에 올라올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나를 포함해 몇몇 신입생 일당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한밤중에 하고많은 건물 중에 테니스장 관제탑에 기어들어간 짓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후에 벌인 행각은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오후 강의를 제끼고 퍼마신 낮술로 불콰해진 솔트 13기(또다시 등장한 옛 동아리.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으니 화수분이 따로 없다) 남자 동기 몇몇은 한 잔 더가 아쉬워 입맛만 다셨다. 집에 갈 차비 말고는 다들 빈털터리였지만 이대로는 못 간다며 머리 맞대고 작당 모의했을 거이고. 그러다 한 녀석이 알 만한 사람한테 돈을 빌려 술을 조달하겠다고 나섰고 그의 노고를 최대한 줄여 주기 위해서 접선 장소를 테니스장 관제탑으로 잡았던 것이다. 여기서 부연 설명. 술을 조달하겠다는 녀석은 법대생이었고 법학관을 뒤지다 보면 안면 있는 동기 내지 선배한테 삐대겠다는 심산이었을 게다. 테니스장을 정면에 두고 보면 오른쪽으로 한 100m 정도 평지를 걸어 가면 법학관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두 손 가득은 아니더라도 구색은 갖출 걸 기대한 게 오산이었다. 녀석은 함부로 굴러 다니는 걸 주운 듯한 손바닥 크기의 <캪틴큐> 한 병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서는 돌려가며 마시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테니스장 관제탑 벽에 기대어 싸구려 양주를 사이좋게 돌려가며 한 모금씩 들이켰다. 싸구려도 술은 술인지라 바늘 따라 실 가데끼 담배가 고파 왔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대학 들어와 배운 담배를 그 맛도 잘 모르면서 다들 입에 달고 살았다. 한 녀석이 담배를 꼬나물자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 장착했다. 그런데, 장대비에 우산도 없이 배회를 한 탓에 가지고 있던 라이터가 물을 먹었다. 가방을 뒤져 낮술 빤 주점에서 집어 온 성냥을 꺼냈지만 그마저도 습기 때문에 불이 안 붙었다. 당시에는 널리고 널린 게 가게 홍보용 성냥이어서 가방 속에 한두 개 정도는 그냥 지참하고 다녔고 그것만 전문적으로 모으는 수집광도 많았다. 하여튼 성냥 한 통에 수십 개나 되는 성냥개비를 다 털어 붙여봤지만 점화는커녕 짓이겨지고 닳아빠진 성냥개비들로 쓰레기통은 넘쳐났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사내들은 그 순간에 아마 이렇게 전의를 불태웠을 게다. 좌절과 역경의 연속이 인생이라지만 그 파고를 정면으로 맞서 넘어서야지만이 참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여기서 담뱃불 하나 못 붙이고 포기하면 어렵게 영접한 캪틴 씨한테 우사스럽지 않겠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자! 뭐 그런 거.
누군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혹시 이리 나부대는 내가 장본인이지 말란 법 없다. 비는 그칠 줄 모르는데 담배 한 대를 품 안에 고이 모신 철딱서니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대학 새내기 남학생 하나가 법학관에서 상학관으로 꺾어지는 코너 한 켠을 지키고 섰다가 자동차 한 대가 막 지나가려는 찰나 온몸으로 막았다. 깜짝 놀란 운전자(점잖게 생긴 중년 남자였으니 교수임에 분명하다)가 항의하기도 전에 남학생이 먼저 용건을 밝혔다.
- 담뱃불 좀 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근대식 성냥공장은 1917년 인천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후 성냥은 가장 중요한 생필품으로 자리 잡았다가 1980년대 이후 가스라이터 보급으로 수요가 줄더니 2000년대 들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기린표(경남산업), 향로(성광성냥), UN(유엔화학) 성냥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성냥에 관한 칼럼(이광표 서원대 교수, 경향신문,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성냥이 그리워질 때), 2021.09.10.)을 읽는데 테니스장 관제탑이 자꾸 떠오르는 건 성냥 때문일까 철딱서니 물 말아 잡순 녀석들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