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에 나가 볼까

by 김대일

제약회사 영업부 차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40대 단골은 깎새가 실없이 늘어놓는 군소리를 잘 받아 준다. 희한하게도 그 단골이 올 적마다 점방은 한산해서 물색없다손 거리낄 게 없다. 며칠 전에도 그 단골 이발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입이 근질근질해진 깎새가 말문을 막 열려는데 때마침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가 눈에 띄었다.

- 만약 유재석이 늙어 죽을 때까지 종영을 안 한다고 가정하면 아마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 돌아가면서 한번쯤 <유 퀴즈>에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그러지 말란 법 없지요.

역시 영업직원답다. 어찌나 이쁘게 맞장구를 쳐 주는지.

- 그러자면 특기 하나쯤 내세워야 하는데.

그게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인가 싶은데도 단골을 보내고 한참을 골몰해하는 깎새. 남들 눈에 도드라져 보이는 특기나 특성이 뭘까? 암만 탈탈 털어봐야 없다. 굳이 찾자면 매일 글 한 꼭지씩 써서 게시하는 거? 꼴같잖다. 글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글이 아니다. 단 한 줄을 끼적거릴지언정 문장은 당장 눈에 밟히고 그 뜻은 웅숭깊어야 글이 글답고 글쟁이가 달리 글쟁이라서 사람들이 떠받들까. 매일 써제낀다고 그런 글이 단박에 나올 리 만무하고 꾸물거려도 제발 문리가 트이길 바라지만 평생 요원할 거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질 않는 깎새 입장에서 글줄 나부랭이 따위로 차별화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뭘로?

생각이 꼬리를 물자 점점 더 심각해지는 깎새. 존재론적 회의라고나 할까? 정녕 나는 무엇이관데 한평생 살다 갈 때까지 족적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건가. 남는 건 이름뿐이라지만 기억해 주지 않는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이 지경에 이르자 갑자기 조급해진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기껏 후반생이라고 해봐야 길어야 3~40년. 일촌광음 같은 여생 동안 <유 퀴즈>에라도 나갈 이름 석 자 남길 묘안이 무엇이 있을지 궁리를 거듭한다. 하지만 마땅한 게 쉬 떠오르질 않는다. 인생 헛살았다는 비감이 뼈저리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방도가 아주 없지는 않을 테다. 이발 기술이 좋은 고수는 지천에 깔렸어도 매일 글을 쓰는 이발사는 드물 게다. 그 글이라는 게 세인의 눈에 밟히고 읽어볼 만하다는 세평이 심심찮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거기에 하나 더 얹자면 한국 토착어로 술술 써내려가는 한국어지킴이 역할까지 자임한다면 좀 차별화될란가? 괜찮은 발상이야!

오해 없길 바란다. 깎새가 속으로 혼자 묻고 답한 거니까. 한마디로 혼자서 놀고 자빠진 거다. 허나 꼭 헛된 망상은 아니다. 개업한 이래로 이발 좀 한다는 소문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느는 추세다. 매일 한 꼭지씩 글 올리는 건 습관이 된 지 오래다. 그 글을 읽어볼 만한 글로 다듬는 데 필요한 절차탁마가 피나겠으나 손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게다가 금세 싫증을 내는 깎새 기질로 미루어 근 10년에 걸쳐 간단없이 이어지는 한국 토착어 수집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메모장에 그득한 게 사실이다. 문제는 그걸 자기 글 속에 녹이는 동화 작업이 필요한데 이 또한 지난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이름 석 자 남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견뎌볼 만할 게다.

전제로 다시 돌아가자. 유재석이 늙어 죽을 때까지 방송이 안 끝나면 언젠가는 자기 차례가 올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깎새는 마침내 자기 이름 석 자에 걸맞은 특기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낮잡아봐도 상관없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은 늙어도 늦게 늙는다.

작가의 이전글반드시 또 갱신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