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존재는 없다

by 김대일

낯선 노인이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친구 소개로 와봤단다. 요새 그렇게 찾는 손님이 제법 돼 깎새 기고만장해진다. 하지만 이어지는 노인 말에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

"근데 그 영감태기 그만 죽었어."

그 영감태기는 과연 누구일까. 전라도가 고향이라던 폐암 앓던 노인? 두주불사를 자랑하던 소싯적 잘나갔다던 형사 출신 노인? 아니면 남들 다 얻는다는 노인일자리 신청해도 자기만 꼭 떨어진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노인일까. 모두들 발길 끊은 지 좀 된 단골들이다.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손님은 노마드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이다. 깎새 입장에서 값싸게 표현하자면 오늘 단골이라고 내일도 단골이라는 법이 없다.

허나 이는 깎새와 손님 관계를 장삿속-잇속이라는 구도로만 재단하는 바라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지만 사람인지라 부재는 늘 그리움을 동반한다. 새 손님 늘어 반가운 이면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의 여운이 묵직하게 몰려온다. 식상한 존재란 이 세상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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