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문

by 김대일

매년 6월 초순이면 하루 걸러 제사 지내러 다니는 깎새. 종조부모 기제사가 그때 몰려 있기 때문이다. 조상 섬기는 데 극진하던 깎새 부친은 기운이 달리는지 몇 해 전부터는 작은집 기제사 참석을 깎새한테 물려줬다. 다른 날은 몰라도 조상 모실 때는 예외 일체를 불허하는 부친 엄명을 충실히 이행 중인 깎새는 그제 개금 둘째할아버지댁에서 제삿밥을 얻어먹었고 오늘은 퇴근 후 용호동 막내할아버지댁으로 출동 예정이다.

그제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던 깎새는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아니 반감이 들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축문祝文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한문으로 된 축문을 해석해 시험 문제로 푼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나긴 한다. 그럼에도 쉰 넘도록 먹은 제삿밥이 몇 그릇인데 '유維 세차歲次~'로 시작하는 축문을 제대로 이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타성적으로 듣고 흘렸을 뿐이다. 축문이라는 게 제사나 다른 의례에서 신령에게 드리는 청원 글, 다시 말해 조상에게 제사 음식의 정성이나 제사 이유, 그리고 조상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원을 담는 글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음가音價뿐인 축문을 읽는다고 산 사람도 모르는 의미를 죽은 귀신이라고 알까. 그렇다면 귀신도 때가 되니 제사상을 받고 타령 삼아 축문을 타성적으로 듣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유구하게 이어진 전통을 부정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닐진대 이왕이면 시대가 변하고 세대도 변한 만큼 구색도 바꿔봄 직해서 드리는 말씀이다. 막말로 읽는 사람조차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글을 읽는다고 정성이 더 깃들었다고 누가 장담할까. 말 나온 김에 형식에 매인 축문 말고 정성은 들이되 기발하면서 좀 튀는 걸로다가 일 년에 한 번쯤 귀신 귀를 호강하게 해드리겠다는데 불효막심이라고 어기대는 자 과연 누구인가. 중요한 건 정성이다.

돌아가신 종조부모님께 절을 드리며 슬쩍슬쩍 '한글 풀이 축문'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금세 축문 하나가 눈에 꽂혔다. 자, 한문 음가 축문과 한글 풀이 축문 중 어떤 게 더 제사 축문으로 이른바 간지나는지 비교해 보라.


* 한문 음가 축문


維 歲次 己卯 幾三月己亥朔 幾十五日丙寅(유세차 기묘 기삼월기해삭 기십오일병인)


孝子00 敢昭告于(효자00 감소고우)

顯妣 孺人 淸道 金氏 神位(현비 유인 청도 김씨 신위)

歲序遷易 諱日復臨 追遠感時(세서천역 휘일부림 추원감시)

昊天罔極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호천망극 근이 청작서수 공신전헌 상)


饗(향)



* 한글 풀이 축문


유 세차 신축년 유월 열 사흗날


​효자 000은 감히 고하나이다.

​조상님으로부터 이어져 온 음덕을 바탕으로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가족(00,00,00, 이름 나열)은

남달리 매사에 정성을 다해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특히 손녀딸 00과 손녀사위 00에게 증손주의 소식 있습니다.


​오늘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준비하였으니

어머님 기제사를 맞이하여 함께 오신 아버님

그리고

함께 동참해 오신 영가님들께서는

저의 이 공양을 받아 드리시어

편안함을 누리시고

저희들을 굽어 살피십시오.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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