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치는' 사람을 더러 겪는다. '짜치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쪼들리다'란 낱말과 겹친다. 요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고 최소한 5천 원 이상을 수중에 지녔으니 점방에 들어선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주 드물게 그 5천 원조차 없거나 모자라 짜치는 손님이 우물쭈물하다 "가지고 있는 돈이···." 쭈뼛쭈뼛거리면 자기도 모르게 한숨부터 내쉬는 깎새. 이발은 꼭 해야겠는데 짜치는 손님 거개가 그전까지는 일체 표를 안 내다가 작업을 다 마치고 커트보를 거둔 뒤에야 실토를 한다. '속였다'보다 '가지고 놀았다'에 더 분개하는 깎새가,
"사정을 미리 말했으면 또 누가 압니까!"
씩씩거려 보지만, 과연 그럴까. 요금 낼 여력이 없다는데 정성껏 깎아 줄 용의가 있는 이발사는 무료 이발을 해주는 선량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면 드물다. 그러니 깎새라고 다를까. 하지만 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짠하고 서운하니 어찌 된 영문인가. 짜친다고 아예 선언부터 하고 들면 어땠을까. 모르면 모를까 알고 나면 너그러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얼마 안 되는 요금 기어이 받아내겠다며 사람을 들들 볶는 말종 오브 말종이라고 무성해질 뒷말이 켕겨서라도 전보다 유연해질 공산이 큰 깎새인데.
공동체가 화폐나 상품거래를 얼마나 경계하는지를 보여주는 교환도 있습니다. 폴라니에 따르면 원시공동체에서는 똑같은 물건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상품의 교환'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해 왔습니다. 동일한 상품을 교환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행동이니까요. 사용가치 측면에서 볼 때 상품의 교환이란 각자에게 필요가 없는 물건을 내놓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동일한 물건을 교환했다면 '필요 없는 물건=필요한 물건'이라는 엉터리 등식이 성립하게 되죠. 물론 교환가치 측면에서 보면 등가교환을 했으니 손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은 맞습니다. 상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무런 이익도 남지 않는 일을 하려고 시장에 나간 셈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정말 쓸데없는 짓일까요? 공동체적 인간관계에서 보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나는 딸아이가 동일한 문구용품을 친구와 서로 교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디자인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똑같은 지우개를 맞바꾸는 겁니다. 사용가치에도 교환가치에도 변화가 없습니다만, 이런 교환을 통해 둘의 우정은 커집니다. 경제학자의 눈에는 무익한 행동일지 몰라도 아이들은 그것이 매우 유익하다는 걸 압니다.
폴라니가 원시공동체들에서 이뤄지는 '동일한 물건의 교환'에 대해 말한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실익이 전혀 없는 이런 교환이 일어나는 이유는 유대를 강화시킴으로써 관계를 더 밀접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교환은 상품교환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공리주의적 사고가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파수꾼" 역할까지 하죠. 가치를 냉철히 따지고 물건을 저울대에 올려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런 관계가 되지 않게 하는 겁니다.(고병권, 북클럽『자본』3-화폐라는 짐승, 천년의상상, 47~48쪽)
혹은 수중에 요금으로 낼 돈은 모자라지만 1,500원 하는 아이스커피나 박카스 한 병 사서 정성껏 내밀며 '이거라도 좀 드시면서···" 선의를 바란다면 천하의 냉혈한이 아닌 이상 아니 건네받고는 못 버티겠지? 그러면서 또 한숨 푹 쉴 게 뻔하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