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by 김대일

지난 일요일 단골인 타투이스트가 왔다. 6밀리 덧날을 바리캉에 장착해 전체적으로 민 뒤 3밀리 덧날로 바꿔 끼워 옆머리를 다듬어 멋드러진 스포츠형으로 스타일링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상주 노릇하느라 수척해진 그의 표정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호전과 악화를 거듭한 끝에 지난 5월 최종적으로 치료 포기를 통보한 주치의가 호스피스 몇 군데를 추천했지만 타투이스트 부친은 생애 마지막을 자택에서 보내겠노라 고집 부렸다. 두 달 가까이 연명하는 동안 일가친척이 속속 찾으면서 부산 처가에 오면 염색하러 깎새 가게를 꼭 들르는 그 집 하나뿐인 사위를 통해 형편을 귀동냥했었다. 그보다는 보름에 한 번 꼴로 이발하는 타투이스트한테서 곧 상주가 될 자의 고뇌가 전혀 남 같지 않게 확 다가오긴 했지만.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점방을 찾은 타투이스트에게 위로랍시고 건넨 말은,

- 아버님께서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신 듯합니다. 요즘 시대에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헌데 깎새는 호스피스 대신 자택을 선택함으로써 겪게 되는 가족들의 노고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임박한 천붕지통과 남은 자의 고통을 비교할 바 아니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임종을 지키기 위해 경기도 평택과 부산 처가를 오가는 타투이스트 누이부부, 밀린 타투 작업을 동업자에게 떠맡기다시피 생계까지 미루고 병석을 지키는 자식을 지켜보는 제3자는 과연 '존엄한 죽음'이라는 수식어로 남겨진 자들의 망가진 일상을 추어올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상을 치르고 삼랑진 장지에 고인을 모신 뒤 타투이스트가 지난 일요일 다시 찾았을 때 깎새 위로는 남은 자들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 얼른 추스르셔야 일상을 회복하지 않겠습니까?

몇 년 전 깎새 부친과 모친은 자의로 연명치료 거부 등록했다. 부친이 먼저 한 뒤 모친을 설득해 깎새가 휠체어로 모시고 갔었다. 부친은 의지가 강고했지만 모친은 부친 강권에서 비롯된 바 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깎새는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임하면 과연 무엇이 최선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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