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줄
심보선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그것이 써진다면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시작이 반이다'는 최소한 글이란 걸 끼적여본 이에게는 금과옥조다. 빌어먹을 첫 줄만 제발 '탁'하고 튀어나와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그 산고는 안 겪어 보고는 모르는 고통이다. 시인이 그걸 또 시로 승화시켰다. 참 대단하다!
'그것이 써진다면/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누가 물어보면 시의 엑기스라고 감히 주장하리라. 시작이 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