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시간대

by 김대일

오후 4시10분. 그날 마지막 손님이었다. 얼굴이 익다. 스타일도 안다. 커트 5분각.

휘뚜루마뚜루 훑고 나서 다듬기 1분이면 마무리인데 전화벨 소리가 요란했다. 다시 강조하건대 1분이면 끝나는데 손님은 끝내 받겠다고 했다. 급한 용무일 거라면서.

'이러면 곤란한데.'

깎새한테는 소음일 뿐인 통화는 세금 감면이 어떻고 몇 백만 원 혜택이 저떻고, 엿가락 늘어나듯 길어졌다. 기다리기 지겨워 염색기구 청소하려고 자리를 뜨는 깎새. 오후 4시면 그날 염색을 마감하고 염색빗이며 믹싱볼을 씻는, 5시 소등에 앞서 갖는 루틴인데 그날은 좀 늦은 편이다. 한 2~3분 걸린다.

염색기구를 씻고 세면대까지 깨끗하게 물청소했는데도 계속 통화중이었다. 앞거울로 슬쩍슬쩍 보며 눈치를 살피는 성싶었지만 여전히 통화가 과잉인 손님. 그 모습에 더 빈정이 상하는 깎새. 그리 중차대한 통화면 커트하기 전에 미리 끝내고 왔어야 했다. 깎새한테는 커트가 손님 세금 감면 만큼 중차대하고 경건한 의식이다. 못 참고 부아가 치미는 깎새. 무시당한 자가 무섭게 돌변하면 말릴 수가 없다. 5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종료 버튼을 누른 손님. 1분도 채 안 걸릴 마무리 작업을 대기하고 있던 깎새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버렸다.

끽끽.

머리카락을 험하게 놀리면 바리캉에서 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커트보를 거두자 손님이 앞거울로 깎새를 응시하며,

- 벌써 끝났어요? 제가 혹시 바쁘실 때 왔나요?

- 아뇨. 왜요?

- 이전하고 다르게 험하게 깎는 기분은 저만 드는 걸까요?

대꾸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라서. 다만 손님 불만은 앞에 달린 전제를 무시하고 있다.



'1분 마무리하려고 당신 5분 기다리는 건 지겹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통화인지는 내 알 바 아닙니다. 여긴 내 점방입니다. 당신 머리를 매만지는 내가 주역이고 내가 그 시간을 지배합니다.

1분이면 끝났을 마무리입니다. 당신이 대중없이 통화한 5분 덕분에 천금같은 내 4분이 날아갔고 경건해야 할 내 커트 의식이 침해당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뿔이 날 수밖에요. 바리캉을 험하게 놀린 건 미안하지만 그 빌미를 제공한 당신도 썩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후 4시부터 점방 소등하는 5시까지는 예민한 시간이다. 마감을 앞두고 그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염색 손님 외에는 그 시간대 오는 손님을 돌려보내지는 않으나 마뜩잖은 존재들인 건 맞다.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임의로 데드라인을 정했는데 잔무가 불쑥 생기면 볼멜 수밖에 없다. 그런 기색이 은연 중에 표가 나면 이같은 사단이 벌어지기 마련이라서 그 시간대만 되면 자동 신경이 곤두서고 노심초사한다.

얼른 전장을 회피한 깎새처럼 세면대 가서 머리를 감는 것으로 손님도 확전을 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깎새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모친이었다. 그 시간대 모친 연락은 무척 불길하다. 정확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어눌한 발음으로 뭔가를 설명하려 드는 모친 목소리를 가늠하는 작업은 지난하다. 드문드문 들리는 핵심단어로 문장을 끼워 맞추려는 건 몇 천 조각 직소 퍼즐을 끼워 맞추는 기분과 다를 바 없다. 재활 운동, 정신, 설사...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단어들 때문에 머릿속만 뒤죽박죽이었다. 앞손님과 대립하다 생긴 쓸데없는 감정 소모에 연이은 타격이 공교롭지만 왜 꼭 설상가상인지 좌절하고 마는 깎새.

모친을 면밀하게 면담한 간호사가 전했다. 재활실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었는데 지금은 괜찮고, 설사를 했는데 식구가 가져온 홍삼스틱 때문이 아닌가 의심스러워 다음에 면회 오면 도로 가져가라고 아들내미한테 연락을 했다. 기립성저혈압으로 인한 실신 증상 같아서 주치의 보고하고 혈압 체크한 뒤 관찰 중이라고 간호사가 안심을 시켜 줬다. 하지만 4시~5시, 마의 시간대 격랑을 헤치다 너덜너덜해진 깎새는 반작용으로 격앙되고 만다. 건드리면 일단 주먹부터 나갈 지경으로. 그럴 때는 자기도 자기를 어쩌지 못하는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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