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는 인간관계론

by 김대일

나는 사람을 만나 쉽게 말을 트지 않는다. 말을 튼다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또 한 사람의 타인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고 나는 그것이 불편하다.



나이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부터 인간관계론의 철칙으로 삼은 위 문장은 출처가 어딘지 가물가물하지만 고종석 작가 소유인 건 확실하다. 다른 50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물론 알 바 아니지만, 최소한 깎새에게 있어서는 지나온 인생 역정에 비춰 삶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금언임에 틀림없다.

처음부터 폐쇄적이진 않았다. 수더분하진 않아도 어우렁더우렁 지내기에 무리가 없었던 청년기를 보냈다는 증언이 꽤 있는 걸 보면 녹록지 않았던 이후 역정歷程이 한 인간을 극적으로 변질시킨 후천적 요인으로 크게 작용한 성싶다. 그럼에도 인연이란 전생부터 이어져 온 깊은 관계라는 불교론적 세계관을 무작정 도외시할 수가 없었던지라 저쪽에서 먼저 툭 끊을지언정 자진해서 냉정하지 못하는 물렁물렁한 성정 때문에 속깨나 앓았더랬다.



나를 좋아하건 안면만 튼 채 무덤덤하게 지내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망극한 나이가 됐다. 알바하고 밤 늦게 퇴근하다 한산한 공원 벤치에 퍼질러 앉아서 나도 모르게 신세 한탄을 할 때, 이런 돌연한 감정 기복을 가족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주변머리가 한탄스러울 그때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하다못해 휴대폰으로 넋두리를 늘어놓을 만한 사람 하나 없다는 것만큼 처량하고 비참한 것도 없다. 그러니 주말마다 모여서 등산을 가든 골프를 치든 뒷풀이로 막걸리, 소주, 맥주, 양주를 동이째 섞어 마시든 그 모든 야단법석을 최신형 휴대폰 카메라 앵글에다 담은 인증샷을 주야로 올리든 나는 새치머리 염색약을 바르느라 손목이 나갈 지경이고 염색한 머리 감겨 주느라 허리가 빠지는 한이 있어도 단톡방을 절대 나가지 못하겠다. 설령 그렇게 해서라도 외롭지 않으려는 게 정답이 아닐지라도. (5년 전 깎새 비망록 중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의외로 은총이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인색해지는 볼썽사나운 완고의 단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번거로운 시행착오를 지레 염려한, 남 손 탄 길로만 어슬렁거리려는 단작스런 보신주의, 타인에게 행여 나약한 심지라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옹졸함을 미리 차단하려는 수작질에 능해지니까.

세월은 한눈 파는 일이 절대 없고, 세월의 파고에 휩쓸려 인생을 부질없이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쌓기만 하면 좋은 건 줄 착각한 관계를 취사 선택하려는 꼼수를 부린 지 꽤 됐다. 점점 강퍅해지는 꼬라지로 마음 맞는 새로운 지인 찾기란 난망하고, 요행히 만난다 해도 우정의 맹아로 진전되리라는 희망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지 눈치챈 지도 좀 됐다. 그물코는 성글고 듬성듬성해져 유통 기한이 지난 지 오래됐음에도 알량한 선의로 헐거워진 우정이라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메워 보겠답시고 남발하는 상투적이면서 의례적인 언사들 앞에서 소화불량으로 내내 고생할 게 뻔하다면 차라리 아니 만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땐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전율까지 일었다. 하여 따로 멀찍이 떨어져서 독락하는 것도 곱게 늙는 방법 중에 하나라 자부한다. 다만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배구공 윌슨 같은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보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친구親舊' 몇몇과 가끔 내왕하는 것으로 자족하는 계기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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