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by 김대일

깎새는 최근 몇 주 어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졌었다. 고교 동아리 동기 둘이랑 한 잔, 그 다다음주엔 대학 과 동기 둘이랑 또 한 잔. 점방 휴일이 아닌 날 술자리는 어지간해선 사절이지만 그들만은 예외다. 작취미성으로 다음날이 고통스럽더라도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한때는 무료한 일상을 어그러뜨리는 활력소임에 틀림이 없어서 그 가치를 셈하기 어렵다. 그들만큼 깎새를 편하게 해주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들과 어울리며 옛날 기분을 내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그들을 통해 중년의 안정감을 대리만족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희열이다.

물론 속내를 디다보면 근심 없는 이가 없다. 젊지 않은 나이에 이혼을 경험한 동기가 있는 반면 낼모레가 정년인데도 미혼인 동기는 결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사업이 번창할수록 그에 비례해 아랫배도 번창해지는 한 녀석은 성인병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고 결코 원하지 않은 DINK족이 되어 버린 다른 녀석 부부가 드러내지 못하는 속앓이는 오죽할까. 옥의 티처럼 중년의 위기를 누구나 하나쯤 품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중년의 보편적인 안정감, 안락함이 지배적이다. 그것을 그들을 통해 만끽하는 경험은 오랜만에 만나 기울이는 술처럼 거나한 즐거움인 것이다.

웬만큼 나이가 드니 시근도 제법 들었는지 아니면 눈칫밥 잔뼈가 굵었는지 만났다 흩어지는 양상이 짧고 굵다. 3시간 남짓인 술자리는 제가끔 다음 일정, 이를테면 다음날 출근이나 가정사 따위로 연장되기보다는 단축되기 십상이다.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구력 쌓인 중년들은 그 시간조차 알차게 놀 줄 안다. 소싯적엔 안 잇고는 못 배기던 2차, 3차는 다음날 일정이랄지 건강상의 이유로 지양함이 마땅하나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눈치라면 마감시간이 간당간당한 커피숍에 들어가 주문하면 즉시 나올 음료를 시켜 흡입이나 다름없이 벌컥거리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속성으로 지껄이는 것으로 그날 만남을 매조지한들 뒷맛이 개운찮을 까닭이 없다.

현실적인 고종명을 인생 팔십으로 잡는다면 한 해에 두 번 정도 만난다 쳐도 예순 번을 못 채운다. 그 사이 애경사가 끼어 횟수를 만회할 수는 있겠으나 거나한 즐거움을 누릴 자리가 아니니 의례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공유하는 희비애락이 점철될수록 관계야 더 공고해지겠지만, 반도 채 안 남은 인생 유쾌하게 바스러지길 바라는 깎새로선 같잖은 비운 따위로 주눅들지 않은 그들과 유쾌하게 회포 풀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다. 깎새란 인간 자체가 썩 유쾌한 편이 아니라서 친구들한테 기대어서라도 반전을 노려 보겠다는 귀여운 몰염치랄까.

매년 두 번 만나는 그들과는 먼젓번 해후로 올해는 끝이다. 때이른 두 번째 만남 이후라 올해 하반기 적적해서 어쩌나 이 글을 쓰면서 걱정하는 깎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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