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 점방 옆건물 자동차경정비 안주인이자 동네 일엔 불도저인 열혈 통장 아줌마가 아침 댓바람부터 인상을 구긴 채 심각하게 도로변 배수구를 쳐다보다가 그걸 멀뚱멀뚱 지켜보던 깎새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려 자기 앞으로 불러세웠다.
- 혹시 누가 버렸는지 봤어요?
모래주머니 두어 개, 그 중 하나를 뜯어 내버리다 만 모래가 너저분하게 배수구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 서울 강남인가 어디에선 배수구가 막혀 물난리가 크게 났대서 그 속 치운다고 돈이 썩어난다는데, 누가 몰상식하게 무단투기하는 건지 원.
전날 밤 늦게까지 배수구 주변이 깨끗했다는 통장 아줌마 증언과 출근했을 때 이미 어지럽혀 있었다는 깎새 목격담을 종합해 보건대 사건 발생은 오전 6시 이전 인적 드문 새벽 무렵이었을 공산이 컸다.
- 이웃 소행인데 무슨 수로 찾지?
동네 환경을 저해하는 요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본색원하겠다는 집요함과 단호함에 이글거리는 통장 아줌마를 단 한번이라도 본 주민이라면 그녀가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님을 직감할 것이다. 그런 통장 아줌마를 경외해 마지않은 나머지 아부하려는 수작이 아니었음을 미리 밝힌다. 배수구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장사치로 너무 안이한 거 아니냐는 맹비난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생색용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혹은 서열 높은 개한테 알아서 배를 까는 시늉이랄지. 두 달 전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 닥쳐 증거 자료 확보를 위해 설치한 외부 CCTV 카메라(실내엔 2대)를 가리키며 깎새가,
- 점방 드나드는 손님 확인 차 바깥에다 설치는 해 뒀는데 배수구까지는 안 보이지 싶은데요.
깎새 손가락 끝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카메라를 확인한 통장 아줌마는 그러나,
- 아니야. 각도가 딱이야! 녹화본 좀 보여 줘 봐요.
이러다 동네 주민들 사이 불화를 야기한 원인 제공자로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는 걱정이 덜컥 든 깎새가 미적대니까 비밀 보장은 물론이고 신변까지 보호해 주겠다고 호쾌하게 선언을 해 버리는데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공익제보자 심정이 이런 것일까.
새벽 5시30분으로 향하던 녹화 영상에서 양손에 묵직한 무언가를 들고 누군가가 배수구 주변에 등장했다. 그러고는 뒤돌아 앉은 채로 그 중 하나를 찢어 수상쩍은 짓을 해댔다. 인상착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면상이 카메라쪽으로 좀 더 돌아가야 했는데 그 순간을 캐치한 통장 아줌마의 사자후.
- 화면 멈춰!
스크린샷으로 찍어 당장 자기 톡으로 보내라고 채근했다. 무단 투기범을 유심히 뜯어보던 통장 아줌마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돌적인 성향으로 봐서는 일단 조지고 볼 것 같더니만 목소리가 의외로 나긋나긋했다.
- 성님, 예전에 서울 강남에서 물난리 왜 난 줄 아셔요? 배수구가 맥혀서 그래요. 그 뒤로 홍수 대비한답시고 너나없이 배수구 치우느라 지자체 금고 거덜나게 생겼잖소. 요 앞 도로 배수구 알지요? 거기에다 누가 모래 버리고 갔는데 CCTV에 다 찍혔어요. 댁 아저씨더러 얼른 다시 치우라고 하이소. 모른 척 해줄 테니.
커트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통장 아줌마가 바깥에서 예의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도 모자라 두 눈까지 끔벅거렸다. 또 뭔가 싶어 내다보니 무단 투기범이 배수구 주변에 버린 모래주머니를 치우고 있었다. 녹화본으로는 미처 분간이 안 되던데 막상 실물을 영접하니 누군지 금세 알겠더라. 통장 아줌마를 급히 찾은 깎새가 애걸복걸했다.
- CCTV 제가 공개했단 말 절대 하지 마세요. 저 분 단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