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운전사

by 김대일

시내버스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앉은 적이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은 운전사가 운전 중에도 전방 주시하랴 왼쪽으로 고개돌리기 운동하랴 부산을 떨었다. 모처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란 것을 해보려는 찰나, 왼쪽에 비스듬이 진열돼 있는 책이 영 거슬려 눈 앞의 책보다 더 자주 힐끗거리는 꼴로 빗댄다면 그럴듯한 설명일까. 하여튼 운전하는 사람 성가시게 만드는 뭔가 때문에 잠깐 정차했을 때는 물론이고 운행 중에도 고개를 연신 왼쪽으로 기웃기웃했다. 문제는 그런 운전사를 바로 뒤에서 직관하는 내가 오금이 저려 죽을 맛이었다는 거다. 내 뒤로 10여 명은 됨 직한 승객들을 향해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를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운전사님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그 무엇이 운전석 바로 옆에서 암약하고 있으니 우리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당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들고 일어나 그 무엇을 당장 쫓아 버립시다!'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운전사의 이상한 행동은 40여 분이 흘러 내가 하차할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하차벨을 눌렀고 연속동작으로 좌석에서 일어서면서 도대체 정체불명의 그 무엇이 하도 궁금해서 운전석 왼편을 곁눈질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회사 연락처, 부산 시내버스 민원신고 번호를 검색했다.

필시 운전사는 최근에 어떤 드라마에 확 꽂혔던 게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에 푹 빠진 그에게 버스 운행 차례는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테고. 도저히 아니 볼 수 없는 유혹을 누르는 게 운전하는 데 더 지장을 준다고 판단한 그는 운전대 옆에다 스마트폰을 고정시켜 운전 중 틈틈이 시청하기로 결정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겠지. 연기하는 배우의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블루투스 기능이 되는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건 덤이고. 승객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해이하고 무책임한 작태라고 그 누가 비난할 텐가. 자기가 무슨 짓을 벌이든 행선지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석만 쳐다보는 승객은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운전 실력 하나만큼은 식은 죽 먹기라고 자부했을 테지. 게다가 눈 감고도 지나다닐 늘 같은 운행 코스라면 게임 끝. 사고 없이 승객들 승하차 잘 시키고 운행 시간만 잘 지키면 운전석에서 무슨 난장을 치든 알 게 뭐냐는 심보였으리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버스 운행 중에 드라마 보는 운전사는 희귀할지 모르겠지만 송수화기 기능을 겸한 이어폰을 끼고 혼잣말하듯 웅얼거리는 운전사는 곧잘 본다. 연극 무대에 선 배우가 독백하는 듯한 중얼거림이 버스 운전석 쪽에서 끊이질 않았던 경우가 버스를 타면 열의 일고여덟이었다. 하도 궁금해 귀를 쫑긋하고 운전석쪽을 디다보면 운전사가 이어폰에다 대고 누군가와 열심히 잡담을 나누는 품이었다. 잡담이라고 감히 단정하는 건, 긴급한 사항이면 용건만 간단히 말해도 금세 알아듣고 그 다음 대응책을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지 전화기만 내내 붙들지 않는 게 통상의 우리다. 웅얼대는 운전사 표정에 여유가 잔뜩 배어 나고 능글능글한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를 보고 듣노라면 흔히 긴급 상황에서 걸거나 받는 전화 용건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누구나 여길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건 끝을 모를 통화 시간이었다. 동선 특성 상 버스 간에서 최소 40분 이상 머물 때가 흔하다. 내가 버스를 타서 내리는 그 순간까지도 말을 놓지 않는 운전사를 여럿 봤다. 아, 나는 진정 몰랐다. 모름지기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운전사라고 하면 운전 중에 한쪽 귀에 이어폰을 상시 꽂아 대화 상대가 하는 말을 주의깊게 경청함은 물론 본인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자질을 갖춘 자만을 우선 채용한다는 걸. 버스 전용차로가 설치되어 있다 해도 도로 위 돌발상황에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당사자로써 안전 운전과 이어폰으로 대화 나누기를 동시에 시전하는 이 놀랍고도 어이없는 짓이 시내버스 운전자의 만랩일 줄이야 누가 알았단 말인가.

<버스 준공영제>

시내버스 영업을 부분적으로 자치단체에서 맡는 제도로 2004년 서울특별시에서 버스노선 개편을 하면서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제도이다. (중략) 최근에는 경기가 더욱 더어려워져 먹고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당금의 시대에는 버스 기사들이 무사고 경력을 쌓아 더 좋은 버스 회사에 입사하려고 기를 쓰는 상황에서 고속버스 회사보다 준공영제 버스 회사로 입사하는 것을 상당히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상 무기계약직 준공무원 취급인지라 급여는 고속버스가 준공영제보다 더 많이 받을지언정 하루 12시간 이상 평균적으로 주 60시간 초과 근무를 해야 되어 과로사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잦은 고속버스보다도 하루 10시간 이하 평균적으로 주 52시간 이하 근무를 하는 워라밸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준공영제가 아무래도 선호도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준공영제는 선호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고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상당히 어려워져 가히 '버스계의 고시급'이라 불리는 입사 난이도가 끔찍하게 어려워 고시낭인을 방불케 하지만 대신 입사에 성공하면 하루 8시간 이하 평균적으로 주 40시간 이하 근무를 하는 워라밸도 철저히 지켜지고 거기다가 급여도 고속버스 싸다구를 후려갈길 정도로 버스 기사들 중에서 엄청 많이 받는 공항리무진과 동급 수준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나무위키 참조)

한 번에 두 일을 벌이는 게 부산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 운전사들만의 고유한 재능인지(다른 지역 버스를 타본 적이 없어놔서) 그간 별 탈 없이 지냈는데 재수없게시리 용렬한 놈 눈에 유독 뜨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에 '일부 몰지각한'이란 진부한 표현으로 부분의 일탈임을 강조하고 그게 또 사실이면 그나마 안심이 되겠다. 선량한 다수는 당연히 보호받는 게 맞다. 그럼에도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일탈자들의 비상식적인 작태가 혹시 그들의 비뚤어진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40시간 이하 근무를 하는 워라밸이 철저히 지켜지고 급여도 많이 받는 사실상 무기계약직 준공무원 대접을 받는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들 본연의 임무인 운전보다 엉뚱한 뻘짓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단지 운전이 반복적이고 무료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업무 특성 상 반복적이고 무료한 게 안전하다는 말과 같다. 그 사실을 그들은 망각한 것일까.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라지만 시내버스 운전사는 누워 잠들면 절대 안 되는 직업이다. 그들이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를 받는 건 '시민의 성실한 발'로 의무를 다한다는 조건에서다. 그런데도 시민의 발이 성실하지 못하면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배 부른 돼지와 다를 게 뭔가. 버스 타기가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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