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

by 김대일

고故 최일남 선생이 쓴 「국화 밑에서」는 장례식장을 하루에 두 군데나 간 주인공이 상주와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인 단편소설이다. 장례 의식 변천사와 요즘 추세, 장례식에 얽힌 이런저런 기억이 나열되던 중에 느닷없이 일본 영화가 등장한다.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2008)라는 영화다. 우리말로는 '애도하는 사람'쯤으로 옮길 수 있겠는데 염장殮匠이에 관한 내용이다. 영어 제목 <디파처Departure>로 2009년 미국 아카데미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소속 악단이 해산하는 통에 백수 신세가 된 신혼의 첼리스트 주인공이 갖가지 곡절을 겪으며 숙련된 납관사納棺師(염장이를 일본에서 부르는 호칭)로 크는 과정을 그렸는데 슬픔과 유머가 적절히 녹아 있다고 소설 속에서는 호평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일본 장례 풍습을 들먹이면서까지 소설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벽이 너무 높아. 주로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는 사회에서는 사자와의 대면이 예사로운데 말이지."

"사실일세. 죽음과 주검을 따로 나누는 과도한 차단 심리가 아니할 말로 비인간적이네. 말이나 글로는 죽음을 매우 대범하게, 애들이 공기받기를 하듯 가볍게 갖고 놀다가도 주검의 실체에는 극도로 가까이하기를 꺼리는 성향이 지나쳐. 병풍으로 가리던 관을 싸늘한 냉장고에 가두면 그만이야. 가족이 아니라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의 모습을 보고픈 친구라고 없겠어? 더구나 고인의 얼굴을 곱게 단장하는 솜씨가 발달하여 살았을 때 이상으로 죽은 얼굴이 한결 깨끗하고 평온해진 마당에." (최일남, 『국화 밑에서』, 문학과지성사, 2017, 26쪽)



깎새 스크랩북에는 일본 장례 문화에 관한, 연식이 좀 된 신문 기사가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속도에 충격을 단단히 받아서였다. 일본여자와 결혼해 일본에서 거주하며 일본살이를 연재한 한국남자가 장인어른 장례식에 관해 쓴 내용이었다. 제목부터 이상했다. <조촐하면서도 화기애애…울음을 삼키는 일본 장례식>이라는 문구를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한 까닭은 일본 특유의 축소지향적 문화를 '조촐하다'란 표현으로 퉁치는 것까지는 알아먹겠는데 '화기애애'란 단어는 왠지 거북살스러워서였다. 아무리 바다 건너 일본이라고 해도 고인을 추모하는 의례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선택이 아닌가. 피붙이와 영영 이별하는 데서 촉발된 슬픔의 깊이가 한국 다르고 일본 다르랴. 헌데 내용을 찬찬히 디다 보니 필자가 왜 그 단어를 제목에다 욱여넣었는지 짐작할 만했다.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른 장례식도 내내 그러했다. 미리 오신 분들은 대기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다과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아이들은 밖에서 떠들며 술래잡기를 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런데 잠시 후 식이 진행되면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여기 온 지 16년이 되었지만 일본 장례식에는 처음 참석해 보는구나, 슬퍼도 겉으로 내비치지 않고, 오히려 슬픔을 내 보이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문상객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느끼게 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경험하게 하는 장례문화였다. 한국처럼 며칠 밤 장례식장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두 시간 동안 망자를 추모하고 기억한다. 아이들은 거리낌없이 할아버지의 얼굴을 만진다. 큰아이는 잠시 숙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할아버지 잘 가요. 그동안 감사했고, 수고하셨어요. 아 참, 저쪽 세상 아름답대요”라며 밝은 미소를 보였고, 둘째는 흰 국화꽃을 장인어른 얼굴 주위로 놓으면서 “꽃향기 많이 맡으시니까 기분 좋으실 거야. 그렇지?” 하며 나를 쳐다본다. 셋째는 장인어른의 얼굴 옆에 자기 얼굴을 내밀고 포즈를 취하고 막내도 누나, 형의 이런 모습에 동화돼 시종일관 웃음을 띤다. 이 광경을 보던, 장례식에 참여한 유일한 외부인이자 한국 사람인 우리 회사 대표가 “우리 할머니가 생전에 꽃상여 타고 저세상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걸 여기서 보네. 이런 장례식 정말 좋은 것 같다”면서 연신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다. 엄숙했지만, 아이들 덕분에 밝았던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옆 건물에서 화장이 진행됐다. 역시 담담했고 그나마 울컥한 이는 내가 유일했던 것 같다. (박철현, 경향신문 <박철현의 일기일회>, 2017.12.22.에서)



기사 내용을 부연하려고 첨부한 사진이 또 기괴해 아연실색했다. 조화弔花에 파묻힌 시신이 그 얼굴만 빼꼼 드러낸 채 안치되어 있는데 관 옆으로 해사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는 여섯 아이들 모습은 그로테스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영원한 이별의 현장에서 할아버지 시신을 직접 만지고 확인하면서 '고인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의식으로써 장례를 체험하는 아이들이라면 꼭 낮잠 자는 할아버지 곁에서 장난을 치려는 개구쟁이인 양 생과 사의 극단성에도 의연하게 견딜 내성의 소유자로 커 나갈 게 틀림없을 테니 괴기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부럽다가 더 맞는 표현일 게다.

고故 최일남 선생 말마따나 죽음은 대범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주검의 실체는 유독 꺼리는 우리의 성향이 고인과의 마지막 대면을 금기시하는 풍조를 낳게 했을 것이다. 상갓집 밥상깨나 받아 봤지만 영정 아닌 시신과 대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경험이 없으니 혹시 마주할 기회가 생긴데도 똑바로 응시하질 못할 게 뻔하다.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에도 영영 이별로 사무칠 회한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자 한다면, 짓눌렀던 속세의 짐을 훌훌 내던져 버리고 홀가분하게 영면한 고인을 향해 최종적인 경의와 작별을 고하려 한다면 우리는 마주할 필요가 분명 있다.

그제 문상을 다녀왔다. 상주는 고등학교 후배다. 깎새가 뒤웅박 신세로 전락했을 무렵 그나마 어울리면서 술까지 받아줬던 고마운 후배의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SNS에 상투적인 애도 추렴만으로 퉁치고 넘어가자니 사람 도리가 아닌 성싶어서. 생전 부친을 무척 존경했던 상주인지라 그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죽치고 앉아서 씩둑거리기에는 초췌해 보이는 상주 걱정부터 앞섰다. 상갓집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버리니 생각만 많아졌다. 영정 속 고인을 생각하고, 망극지통을 당한 상주를 생각하며, 상갓집이 아니면 새삼 조우가 어려운 낯익은 문상객들을 생각했다. 깎새가 상주 입장이 된다면 어떨지 기어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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