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코미디언
문정희
코미디를 보다가 와락 운 적이 있다
늙은 코미디언이 맨땅에 드러누워
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트린 어린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코미디를 보고 운다고·····
그때 나는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웃음과 눈물 사이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어두운 맨땅을 보았다
그것이 고독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그런 미흡한 말로 표현되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맨땅에다 시 같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늙은 코미디언처럼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고故 전유성은 그 성격은 좀 다르지만 '남을 웃기면서 나는 슬픈' 광대라는 범주 안에서는 어슷비슷하다. 이 시대 최고의 개그맨이 별세한 이후 그 여운이 전혀 가실 줄 모른다. 시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되새겨 본다.
"웃음은 남을 주고 슬픔은 내가 안고 간다." 코미디언 배삼용의 말처럼, 많은 코미디언의 생애에는 깊은 그늘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 1980년대에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등의 말로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던 코미디언 이주일은 아들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직후에도 무대에 섰다. 그 사정을 알고 있던 관객들과 스태프들은 그가 아무리 웃긴 이야기를 해도 웃지 않고 울었다. 그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왜들 우세요. 울지 마세요. 자꾸 엔지가 나잖아요. 자 웃으며 날 봐요."
"유머의 은밀한 근원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라고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희극과 비극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듯하다. 그것을 보여주는 시 한 편이 있다. 문정희의 「늙은 코미디언」이다. (김찬호, 『유머니즘』, 문학과지성사, 2018, 234~235쪽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