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단속

by 김대일

솔직히 일머리가 남보다 뛰어나다고는 보기 힘든 깎새가 눈썰미까지 시원찮으니 거의 치명적이다. 하여 맡긴 물건 찾듯 먼젓번처럼 깎아 달라고 하면 난감하다 못해 화가 난다. 전에 깎아 봤으니 제 머리 스타일쯤 눈 감고도 척척이지 않겠냐는 게 손님 주장인데 터무니없을 뿐더러 그렇게 깎아봤으면서도 깎새를 모르느냐고 오히려 대들고 싶은 심정이니까. 깎새 제멋대로 정한 단골 기준은 최소한 일 년 이상, 횟수로는 10번 이상 매만져 본 두상을 걸친 손님이어야 한다.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가 누구인지 깎새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남의 돈 벌어먹겠다고 작정한 장사치로 대성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절망적일밖에.

꾀를 내긴 한다. 허물없이 지내는 단골이 아니면 일단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 묻고 시작한다. 물론 일전에 깎은 자국, 즉 커트선이 눈에 대번에 들어오지만 괜한 눈대중만 믿고 저지르는 어림짐작은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다는 아닐망정 변덕이 심한 손님이 개중에 있다. 지난달 깎은 스타일을 웬만하면 고수할 법도 한데 주문이 요랬다조랬다 바뀐다. 물어보는 걸 깜빡하고 먼젓번처럼 실컷 깎고 났더니 다시 골라 달라며 정색하면 깎새만 애먼 놈 된다. 커트보를 거뒀다가 다시 치는 짓은 의외로 번거롭고 대기손님이 넘칠 땐 불쾌지수를 확 밀어 올려 급기야 손님 뒤통수가 샌드백으로 보이는 착각이 들게 한다.

시원찮은 눈썰미로 야기된 깎새 건망증과 손님 변덕이 결합해 일으키는 환상적인 반응은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 그 자체다. 그 파티의 끝은 곧 나락이자 파국일지니 한시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긴장해야 마땅하다. 하여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임을 금과옥조로 여겨 손님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기억력조차 불신하기 바쁜 깎새는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는 심정으로 '오늘도 묻는다마는 정신없는 이 병통'을 부르짖으며 스스로를 단속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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