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단골들

by 김대일

- 나많은 단골이 발길을 끊을 때는 이유가 딱 두 가지뿐이다. 병 들어 입원했거나 죽었거나.

오랜 구력을 자랑하는 깎새 부친이 느닷없는 단골의 묘연함에 대해 내린 분석은 차라리 처연했다. 한동안 뜸하다가 다시 나타난 단골 거개가 그간 두문불출했던 까닭을 득병 때문이라고 밝히는 걸 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정확한 진단이긴 하다. 내처 발길을 뚝 끊은 단골의 행방을 별세로 단정하자니, 그게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는 설명할 길이 달리 없으니 비통할 따름이다.

전라도 곡성이 고향이라던 노인은 꼭 고급염색만 주문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다지만 전라도 억양이 구수했던 노인은 한때 건실한 회사를 운영했다고 늘어놓았다. 그러다 십여 년 전 이상을 느껴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폐암 3기래서 그길로 하던 일 다 접고 치료와 요양에만 몰두했다. 서울 유명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에 다행히 몹쓸 암세포는 떨어져 나갔지만 재발을 염려해 주기적으로 서울 병원에 가서 몸 상태 체크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에 친구들과 부산 맛집을 순회하거나 등산, 여행으로 소일하는 일상은 여유로워 보이거니와 깎새한테까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게 뭔지를 여실히 보여주곤 했다. 2만 원 요금 지불하려고 5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길래 3만 원을 거슬러 줬다. 거스름돈을 지갑에 넣는 듯하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깎새한테 도로 건넸다. 그러고는 "다음달에는 더 잘해 줘잉" 툭 던지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다. 살짝 멋있었다. 넉넉하고 느긋한 노인의 행동거지에서 가진 자 특유의 오만함을 발견해 내기란 어려웠다. 대신 만나면 상대방을 흐뭇해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손님으로 기억만 깊게 남아 있을 뿐.

매번 똑같은 주문이지만 늘 까다로웠다. 한쪽이 눈썹 밑에까지 내려오는 언밸런스한 앞머리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고, 옆머리는 회를 뜨듯이 뾰족하게 처리하는 샤기컷을 연상시키게 살짝 걷어낸다는 기분으로 숱가위로만 작업해야 하며, 뒷머리는 안 보이니까 깎새가 실력껏 매만지라는 것. 동네 자주 다니는 목욕탕 늙은 이발사와 눈이 마주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맡길 때를 제외하고 깎새가 개업한 이래 보름 주기로 점방을 찾아 오래전에 단골 of 단골로 등극했다.

하지만 세상은 밝은 면이 있으면 반대로 어두운 면도 있는 법. 등장이 반가우면서도 그 즉시 긴장 모드로 돌입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원하는 옆머리 스타일이 완성될 때까지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는 수고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 작업을 할 적마다 손님 눈치를 슬슬 살펴야 하는 이중고로 늘 진이 빠졌다. 물론 그런 깎새 노고를 잘 알고 있기에 커피값이라는 의뭉을 떨며 거스름돈을 안 받는 센스를 발휘하긴 하지만.

정년을 훌쩍 넘겼는데도 퇴직하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회사 오너가 인정하는 기술력과 성실성이라는 자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나 주머니 사정 딴딴한 이에게서만 풍기는 여유만만한 행동거지며 말투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를 꾸미는 데 드는 비용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머리 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한 또래에 섞여 있음 금세 도드라질 만큼 세련되고 유니크한 입성을 자랑함은 물론 초로가 소화해 내기엔 벅찬 디자인으로 무장한 운동화를 장착한 걸 값으로 치자면 꽤나 만만찮을 텐데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왕 돈질할 요량이면 더 값비싼 데로 향해야 구색이 맞을 텐데 굳이 저렴한 깎새 점방을 고집하는 이유가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그나마 얼추 맞춰줄 줄 아는 프로페셔널이라 그렇다고 추켜올리는 바람에 깎새는 자뻑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더랬다.

단지 젊게 보이고 싶어서 그리 꾸미는 건지 다른 숨은 의도가 있어서인지는 말을 안 하니 깎새는 모른다. 농담 삼아 슬쩍슬쩍 비치는 사설로 속내를 유추해 보자면 썩 순수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꼴값 떤다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무릇 인간이라는 동물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성한테 깔롱지기고 싶은 욕구야 본능적이니까. 이왕이면 젊고 발랄하게 보임으로써 호감 뿐 아니라 성적 매력까지 어필할 수 있다면 뭐든 마다하랴. 그 뒤의 일이야 당사자들끼리 알아서들 하시겠지만. 부쩍 친해졌다고 여겨서인지 낯익은 얼굴이 점방문 열고 등장하면 "깔롱쟁이 납셨네?" 아는 척을 하고, "마이 늘었네 원장." 맞받아치곤 했더랬다.

안정적인 매상을 견인하는 뒷배에 그치지 않고 쳇바퀴 도는 무료한 일생에 찌든 깎새를 자극시키는 역할까지 더하는 단골은 분명 있다. 당사자도 거기에 수긍할지 그 심중을 살필 수 없어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상대방을 들뜨게 만드는 기운을 몰고 다니는 단골을 대면할 적마다 깎새는 무척 설렌다. 깎새에게 들씌워진 무미건조를 실없이 던지는 농담만으로도 일소시키는 능력의 소유자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하여 덥수룩해진 두발을 말끔하게 소제하고 새치를 탐스러운 흑발로 변모시켜 그를 일신시켜 주는 깎새 자신이 오히려 더 뿌듯할 지경이다. 비록 서비스를 판매하고 구매하는 상거래적 구조에서 비롯되었을망정 일을 하는 보람이랄지 희열이 충만해지고 생기까지 불어넣어 주는 촉매 역할로 단골은 깎새 일상에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부인할 길 없다.

그런 단골들이 자취를 감췄다. 맛집, 절경 찾아다니느라 혹은 자주 다니던 목욕탕 이발소 늙은 이발사가 눈에 밟혀 적조할 수밖에 없다면야 다행이겠지만 그 틈이 서너 달이 넘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깎새 부친이 단언했던 말이 자꾸 떠올라 불길해져서다. 아니길 바라지만 불안한 심증은 점점 굳어진다. 매상 떨어지는 건 문제도 아니다. 불가항력일지언정 관계의 단절은 의외로 여파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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