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급을 요하는 건 아니었는데 박이 깎새한테 SOS를 보낼 수밖에 없게 유도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시급을 요할 법도 했다.
사회복지공무원이라는 공복을 충실히 수행 중인 김이 요사이 외로움을 부쩍 타는지 박한테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나 보더라. 독신남 처지란 게 나이를 먹을수록 보일러를 암만 빵빵하게 틀어도 꼴랑 곁불 쬐듯 등허리가 시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신을 서자니 박이란 위인이 그런 쪽으로는 영 젬병인 관계로 깎새한테 슬쩍 그 짐을 미루려고 수작을 부린 게다. 미련곰탱이 김과 얽힌 일화를 글로 써서 숱하게 올린 깎새 입장에서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바, 주변 관계망을 십분 가동시켜서 생색이나마 내야겠다고 마음 다잡아 먹는다.
말 나온 김에, 이 글을 읽는 당신 중에 주위에 좋은 분 계시면 소개시켜 주는 아량을 베푸심이. 미련곰탱이 김은 깎새가 보증한다. 깎새가 아는 김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성별: 남자
- 나이: 72년 쥐띠. 그 나이 먹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 본 쑥맥. 물론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여자(과 동기)가 있었고 녀석을 짝사랑했던 여자(과 후배)도 있긴 있었으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짝' 자가 들어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헛물만 켜다 맘.
- 직업: 기간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정규직 전환이 난망하다고 깨달은 순간 집어치우고 잠적. 2년 정도 두문불출해서 세상이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한 걸 비관해 혹시 엉뚱한 짓을 벌인 게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서러운 기간제 대신 정규직 공무원 되겠다고 발버둥친 거였슴. 지금은 부산 해운대구 소속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제 앞가림 너끈히 해내는 중.
- 이상형: 이제서야 제 분수를 알아챘는지 자기보다 나이 어린 것만 빼고는 다 괜찮다면서 조건 안 따진다고는 함.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외롭다면서 물불 가리면 앞뒤가 안 맞음.
- 깎새와는 대학교 과 동기. 입학해서 여지껏 무탈하게 지내는 중. 햇수로 35년째라 지긋지긋할 법도 하지만 그러니 사람 가지고 장난을 못 침.
이왕 소개하는 김에 미련곰탱이를 글감으로 썼던 글 한 대목도 첨부하려고 한다. 녀석에게 사람 소개시켜 줄 용의가 있다면 댓글로 달아 주시길 바란다.
Do ut des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종섭이 죽던 날은 모처럼 김과 만나 편하게 한 잔 하려던 날이었다. 월요일 오후가 가장 편하다는 소릴 내가 언제 지껄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귀담아들었다가 휴가를 냈다는 김한테서 연락이 온 건 이틀 전 토요일이었고 녀석의 그런 배려가 미치도록 고마웠다. 월요일 아침, 김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는데 부음이었다. 급작스런 비보를 접한 나만큼이나 충격이 컸던 김이었다. 그날 저녁 같이 조문을 하고 수요일 장지에도 동행하기로 했다.
종섭과 김은 같은 과 동기들이다. 둘 다 교육계에 종사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종섭이 생전에 신망 두터운 정교사로 승승장구했던 반면 김은 기간제 교사라는 현실에 부딪혀 고배만 흠씬 들이켜다 교단을 떠났다는 점에서 그 둘의 교사 역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 김을 종종 언급했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 내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제 잇속 한번 제대로 못 챙기는,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곰과 소가 흘레붙어 나온 새끼' 같은 김을 안쓰럽게만 여겼었다. 하지만 타산이랄지 가식과는 거리가 한참 먼 천성 탓에 인생이 굴곡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녀석이 주인공인 여러 비화를 통해 뒤늦게 깨달으면서 더 이상 녀석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파란만장했던 전반생을 밑거름 삼아 남은 후반생은 보다 유여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할 뿐이었다. 다행히 늦은 나이임에도 2년 전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녀석의 일상은 전보다는 탄탄해졌고 장밋빛 미래도 꿈꿔 볼 만해졌다.
종섭을 묻고 장지를 떠날 때 나는 김이 모는 차를 얻어 탔다. 새벽잠을 설쳤다는 김은 푸석푸석했다. 느닷없는 사별을 감당하기가 김이나 나나 너무 벅찼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무거운 침묵이 심신을 더 옥죄기 전에 흘러간 유행가를 읊조리듯 우리는 옛 추억을 일일이 들춰내 뇌까렸다. 단물 다 빠진 껌 같은 과거지사를 두고 한참을 헤실거린 끝에 김이 말했다.
- 너라도 있으니 좀 낫다.
고마웠지만 내가 할 소리였다. 김이라는 인간 덕에 나는 곁에 친구 하나 없는 각박한 인간이란 비난을 면했다. 그러니 중신아비를 자청해서라도 미적미적거리다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지 모를 녀석을 구해주고 싶다. 아니, 녀석이 요청하는 거면, 내 능력이 닿는 한, 뭐든 들어줄 테다. 하여 친구 위할 줄도 아는 놈이라는 공치사까지 듬뿍 듣고 싶다. 김은 내게 그런 녀석이다. 미련곰탱이일지언정.
친구여,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 자신의 안부를 확인(Si vales bene valeo)받았네만 이제부터는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주기로 한다(Do ut 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