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때가 좋을 때

by 김대일

이발사가 되겠다고 문을 두드린 지 1년 반만인 올 9월에 천신만고 끝에 자격을 땄지만 사이사이 아버지 가게로, 금~일 커트점 알바로, 이용학원 무료 이발반을 전전하면서 커트 시다 노릇을 겸한 지도 10개월쯤 됐다.

부친은 가게 오픈은 시기상조라고 하시면서도 목이 좋은 부동산 물건을 부쩍 자주 알아보러 다니시거나 나더러 둘러보라신다. 부친 아직 정정하시니 부자가 한 가게를 꾸리기보다는 나 혼자서 밥벌이할 만한 곳을 미리미리 알아보겠다는 심산이신 것 같다.

하지만 당장 목 좋고 싼 물건이 나온다 하더라도 내가 어정떠서 안되겠다. 지난 10개월 들인 공을 공으로 안 친다 해도 부친이 누누이 강조한, 언제 어디서고 욕 안 들어먹을 정도의 기술력에 이르기 위한 단련기(2~3년)를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합격의 뿌듯함은 요정도로 누렸으면 됐고 다시금 수행의 길에 들어설 참이다.

격려 차원인지 고수의 냉정한 평가인지 모르겠지만 이 바닥에서 3~4년쯤 굴러먹은, 머리 깎는 흉내나 겨우 낼 줄 아는 수준은 된다고 부친은 내게 자주 말씀하신다. 입문 1년 반만에 3~4년차라니 어깨 으쓱해질 만도 한데 곧바로 강타하는 현타.

- 그게 가게를 꾸릴 깜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남자 머리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달라서 당연한 소리겠지만 손님들 요구사항도 천차만별이다. 가게 차려서 충성 단골이라도 만들라치면 각양각색의 손님들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해도 최소 7할 이상의 고객만족도를 상시 유지시킬 때 가능하다. 즉 편차가 거의 없는 기술력을 보유해야 밥 안 굶고 살 수 있다는 건데 부친이 보시기에 지금의 나는 한 마디로 들쭉날쭉, 기복이 심해 당장은 못 써먹을 하수라는 엄정한 결론이시다.

금~일 나가는 커트실 알바가 현장 실습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지만 원장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서 문제다. 매상에 직결되지 않는 어떠한 뻘짓도 용납하지 않아서 운신의 폭이 좁다. 이 눈치 저 낌새에 휘둘리다 보면 정작 내 잇속 챙길 건 별로 없다. 부친 가게 역시 실무 현장으로는 그만이지만 진득하게 눌러 앉아 배우기에는 여건이 썩 좋지 않다. 부친을 보좌하는 종업원 기분도 생각해야 하고.

하여 또 목돈 들여 실무 학원을 들어가기로 하고 그제부터 출퇴근하고 있다. 일반적인 이용학원과는 달리 요금 내는 손님들이 와서 머리를 깎는 곳이다. 여느 이발소와 똑같다는 소리다. 회비를 지불한 학원생은 이발소와 똑같이 손님을 응대하고 머리 깎고 요금을 받는다. 요금을 내기 때문에 손님은 왕이 되고 학원생은 왕의 요구 사항을 받들어야 한다.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그 즉시 불평이 쏟아진다. 주말 알바 커트점, 아버지 가게와 다를 게 전혀 없다. 손님을 받을 차례가 오면 조여오는 적당한 긴장감이 나를 흥분시킨다. 단 한 올의 터럭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빗을 놀리고 바리캉을 돌려댄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커트보를 거둘 때 최종적으로 손님이 왕인 자의 안색을 살핀다. 별 말이 없다. 다행이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겪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한 뼘은 더 커진 나를 발견하게 되겠지.

적은 돈이 아니지만 여기에 제대로 투자한 게 맞다. 기한은 내 가게를 차릴 때까지라 추가 부담은 없다. 그렇다고 한정없이 학원을 드나들 건 아니다. 일신우일신해 단련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게 지상 과제다.

금~일은 알바로 월~목은 여기 학원으로 일주일이 쉴 틈 없이 돌아가겠다. 바쁠 때가 좋을 때라는데 그럼 지금이 호시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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