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기간이 길어지자 모친은 여간 성화가 아니시다. 다 나았는데 왜 집엘 안 데려다 주냐고. 부친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퇴원 시점이 임박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래저래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아 걱정이다. 당신은 완쾌됐다고 하나 파킨슨에 척추 손상 후유증으로 휠체어가 아니면 거동이 불편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으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식사, 대소변 가리기, 잠자리 등등. 그보다 더 큰 걱정은 가게를 새벽에 가서 초저녁에 돌아오시는 부친의 부재시(근 10시간) 모친을 전담해 돌볼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모친이야 당신 알아서 간수할 수 있다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불효자가 아니다 나는.
국민건강관리공단을 통해 주간보호센터라는 돌봄기관에 대한 안내를 받고 부모님 거주 지역 내 기관 리스트도 건네받았다. 그 중에서 전년도 평가 우수등급을 받았다는 한 곳을 며칠 전에 찾았다. 부산 당감동에 소재하던데 본가와는 차량으로 30분 내외 거리였다. 제반 여건은 괜찮았고 조석으로 모친을 픽업하는 서비스도 우리 요구 조건에 대체로 부합했으며 대충 계산한 한달 본인부담금도 적정했다. 당장에라도 모시고 싶은 욕구가 일었지만 가장 중요하면서 난관인, 최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돌덩이마냥 버티고서 나를 무겁게 만든다.
모친은 당신의 온전치 못한 건강 때문에 가족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로 인해 가족 울타리에서 영영 이탈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한다. 종합병원에서 재활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길 때 상당한 설득을 필요로 했던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퇴원하자마자 왜 주간보호센터에서 한나절을 보내야 하는지부터 납득시켜야 하지만 그게 입에서 잘 떨어지질 않을 뿐더러 내 마음마저 착잡하다.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먹고 살아야 돌봄도 가능하다는 어쩌면 이 각박한 시절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왠지 이유 같지 않다는 송구함이 내내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요새 특히 눈이 자주 가는 칼럼 중에 한겨레신문 문화기획에디터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2021.09.30.자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신뢰와 애정, 연민 등의 상호작용이 없는 돌봄은 돌보는 이를 고통과 분노에 빠뜨릴 뿐 아니라 돌봄을 받는 이도 기능적 도움 이상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누구보다 모친의 안위를 걱정하고 누구 못지않게 모친도 당신만의 삶을 당연히 영위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현실을 점점 기계적으로 타성적으로만 임하려는 내가 무섭다. 모친과의 비대면 면회가 잡혀 있다. 어떻게 모친을 설득할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