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의 세계

by 김대일

대학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 때 컨닝하다 걸렸다. 시험 감독관은 당시 학과 사무실 조교를 맡은 하늘같은 선배였다. 한참을 베끼는데 깍짓동만 한 사내가 스윽 유령처럼 내 옆에 와서는,

- 와 꽈 수석 묵을라꼬?

특유의 하이톤으로 뇌까렸다. 내일모레가 졸업인 녀석이 궁상맞다는 소릴 에둘러 꺼낸 건데 그나마 덜 면구스러웠다. 조교는 그 뒤로 부산 사투리 연구의 권위자가 되었다. 부산 사투리에 관한 한 그 양반만 한 연구 업적이 없지 싶다. 부산시 기관지인 <다이내믹 부산>은 부산 지역 일간지의 무가지로 한 달에 한 번 배달된다. 부산 시정을 소개, 홍보하면서 자화자찬을 적당히 끼워 넣은 게 주 내용인데 뒤지다 보면 흥미로운 게 간혹 눈에 뜨인다. 어제 배달됐길래 지면을 건성건성 훑다가 컨닝 적발한 그 조교 얼굴이 불쑥 튀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칼럼을 읽어나갔는데 재밌다 이거!

<'사투리'가 아니라 '부산말'입니다>란 제하로 부산의 문화재이자 정신적 보물, 무한한 콘텐츠로써의 부산말(부산 사람의 삶이 녹아 있으며 부산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강조한 필자의 신념을 반영해 '부산 사투리' 말고 '부산말'로 부르겠다 )을 지키고 가꿔야 한다고 필자는 역설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부산말만이 가지는 특징을 열거했는데, 높낮이가 뚜렷하고 말이 빠르고 축약과 생략이 많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높낮이다.

높낮이는 단어를 길이로 변화했지만, 부산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높낮이는 단어를 길이로 늘어지게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모아서 높거나 낮게 발음해야 해서 길이가 긴 모음 즉, 이중모음은 자음 뒤에서 발음되지 않는다. 그래서 '명물'을 '맹물'로, '경제'를 '갱제'로 발음하기도 한다. 부산사람이 이중모음 발음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말은 높낮이로 충분히 구분할 수 있어서 발음이 어려운 이중모음을 발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 이름 '영수'는 '앵수'로 발음하지 않는다. 첫소리에 자음이 없어서 이중모음이라도 하나의 음절로 높낮이를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근열 부산대 국어교육과 강의교수, <다이내믹 부산>, 2021_16호)

둘째로, 축약과 생략이다.

뱃일하는 부산에서는 말을 길게 하면 배 위에서 서로 잘 전달되지 않기에 축약과 생략이 발달했다. '선생님'을 한 음절로 줄여 발음하기 위해서 첫째 음절은 앞 자음 'ㅅ'과 둘째 음절은 중간 모음 'ㅐ', 마지막 음절은 끝 자음 'ㅁ'을 모아 '샘'으로 집적해 나타난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동사 형용사 관계없이 '안'을 앞에 두는 것으로 사용하기 쉬운 문법을 선택한다. '먹지 않았다'를 '안 뭈다'로 '예쁘지 않다'를 '안 이쁘다'로 사용한다. '머 뭈나?'와 '머 뭈노?'와 같이 -나, -노'를 사용해 먹었느냐 아니냐는 판정 의문과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설명 의문을 구분하는 것도 효율성에 근거한 것이다.(위 칼럼)

공교롭게도 요즘 사투리에 관한 책 두어 권 읽고 있다. 충청도 사투리가 왜 그리 땡기는지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뒤져 대여했다. 사투리라 하면 서울 이외 변두리 지역의 촌스러운 말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서울말이 표준어는 아니다. 서울에서 통용되는 말이고 표준어에 근접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표준어는 칼럼 필자의 의견을 빌자면, 여러 지역에 사용하는 말에서 두루두루 뽑아서 만든 것일 뿐 서울말이 표준어의 정형은 아니란 소리다. 전라도 말 '아따'가 빈정거릴 때 쓰는 표준어이고, 경상도 말 '삐대다'는 '한 군데 오래 눌어붙어서 끈덕지게 굴다'는 뜻의 표준어라고 밝힐 때는 오, 쌈박한데!

서울 물 좀 먹는답시고 어줍잖은 서울말을 쓰면서 뻐기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중앙 지향 인간으로서의 처신인 줄 알았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말이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란 걸 깨달으면서, 표준어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말의 여운이라는 게 사투리에는 무궁무진하게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눈치채면서 표준어보다는 사람의 삶과 역사가 집적된 사투리에 마음 뺏겼다. 균형 잡힌 삶이 평온한 법인데 원심력에 기대야 사는 기분이 더 날 때가 있다. 사투리의 세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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