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새 이야기는 불편하다

by 김대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공자의 말씀이다. 이를 '내가 원하는 걸 남에게 해 줘라'고 뒤집어도 뜻은 통한다. 그런데 이 언명이 타당하려면 '내가 원하는 것과 남이 원하는 것이 같'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원하는 걸 남도 원할 만큼 순진무구한 단순계가 아니기에 장자가 공자를 깠다고 철학자 강신주는 주장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줬음에도 바닷새가 죽어 버린 『장자莊子』 「지락至樂」편에 나오는 비극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사랑해서 이 새를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리고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양을 잡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새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사흘만에 죽어버렸어요. 저는 사랑이 함께 있으면 기뻐하는 마음과 사랑의 대상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이 합쳐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와 함께 있는 것이 기뻐서 잡아두기는 했는데 바닷새에 대해서 알려고 하질 않았어요. 이건 노나라 임금이 혼자서 바닷새와 사랑하는 방법을 미리 정해두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셈입니다. 바닷새와 나는 다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조심스럽게 시도했어야 하는 것이지요.(강신주 철학자)



자기 틀에다 남을 맞추는 어리석은 짓은 집착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집착이란 자기 틀에 남이 맞지 않으리라는 차이와 맞지 않은 틀은 남을 위해 새로 짜야 한다는 존중이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야기되는 망상일 테다. 그러니 집착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는 것과 같이 종국에는 집착하려 드는 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역설이 예고된다. 가깝건 멀건 사람 사이 관계는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차이를 긍정해야만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곧 자기만의 철옹성에 가둬 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미련없이 풀어주는 것과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너가 연결되는 소통이 필수적인데.



장자의 바닷새 이야기를 곱씹으며 생각한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너를 길들이려고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너와 대화한 것이 아니다. 너의 존재방식에 섬세하게 깨어 있지 않다면, 내가 아무리 너에게 악수를 청했다고 해도 나는 너와 소통한 게 아닐 것이다. 좀더 강력하게 말하자면, 그런 태도는 비록 사랑을 말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억압하고 죽인다.

(·····)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먼저 나의 욕망을 비워야 한다. 마음의 귀를 쫑긋 세워 작고 여린 소리들까지 광대역으로 수신할 것.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김선우 소설가)



정말 쉽지 않다. 내 욕망을 비우면서까지 남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니 바닷새 이야기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더부룩한 속처럼 불편하다. 머리는 아는데 손발이 잘 따라가질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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