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은 안이하면 생기는 증상이다. 일단 타성에 젖으니 모든 게 식상해진다. 정체되어 있는데 창의적일 리 만무하다. 늘 하던 대로 기계적으로 이어나갈 뿐이다. 그 지경에서 참신한 뭔가를 찾기란 난망하다. 요즘이 딱 그짝이었다. 달리 말하면 등 따숩고 편해졌다는 소리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사람 속성이 깎새라고 다를 리 없으니 편해질수록 늘어지기만 한다. 가슴 속에서 불쑥불쑥 솟구치던 불기둥(그걸 열정이라고 치면)이 댕강 잘려 나간 기분, 치열했던 동력이 식어 버리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끼적거리고 게시하는 짓에서 낙을 찾던 자가 끼적거리는 짓이 성가시다고 느끼면 볼장 다 본 거다. 돌파구를 찾지 않는다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대로 무미건조하게 늙어 사라지고 싶지 않다.
박한테 신기가 있는 게 분명하다. 며칠 전 연락이 와 미련곰탱이 김의 중신을 부탁하다 말고 무기력해져 가는 깎새 일상을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신박한 정보랍시고 부산문화재단이란 곳에서 주관하는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에 지원하라고 부추겼다. 매년 11월부터 지원 신청을 받는데 깎새야 책을 낸 경력이 있으니 자격은 충분할 테고 그동안 여투어 둔 원고도 숱하니 선정은 따놓은 당상이라면서 지원이 결정되면 거하게 한잔 사라는 사탕발림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좋다 말았다. 박이 그리 장담했던 자격이 미비한 관계로. 작년 공고 내용을 확인해 보니, 문학 부문에 개인으로 신청하자면 최근 5년 간 총 3건(발간 또는 기고 따위) 활동실적 자료를 첨부하거나 예술활동증명확인서를 제출해야 했다. 올해 공고도 별반 다를 게 없다면 플랫폼에 글만 들입다 게시했을 뿐 책을 내거나 기고한 적이 없어서 전자는 해당사항이 전혀 없고, 5년 전 발간했던 수필집을 근거로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에 들어가 예술활동증명 확인서를 부랴부랴 신청했지만 검토 후 발급되기까지 10~12주가 걸린다고 하니 올해는 물 건너 간 셈이다. 신청했다고 확인서가 덜컥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지원금 나오면 거하게 한 턱 쏘라고 김칫국 퍼마신 박한테 연락을 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깎새보다 더 아쉬워하면서도 짐짓 털털한 척 위로를 건넨다.
- 몰랐으면 영영 몰랐을 거 아냐. 알았으니 내년 말에는 차질없을 거야.
지원한다고 선정된다는 보장이 없고 그마저도 헛물만 켜다 말았지만 그 와중에 두근거리는 기분 모처럼 느껴봤다. 하고 싶은 게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집중하면서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활력이 생기는 순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다가 여지껏 뭔가를 잊고 지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된 깎새. 하고 싶고 꼭 해야 할 게 분명 있었는데 어느 순간 깡그리 까먹어 버린 그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마음을 먹자 머리가 굴러가는 기분이 새로운 깎새. 그게 무엇이라고 당장 밝히지는 않으련다. 말만 앞세우다 또 유야무야될까 두려워서. 대신 완성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조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되 고조된 기세가 꺼지지 않도록 늘 상기된 상태가 이어지도록 애를 쓸 작정이다. 지금은 조증躁症이 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