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저씨

by 김대일

한 자리에서 장사를 오래하면 권력이 생긴다. 개저씨를 압도하는 권력. 개저씨가 뭔지 들어봤을 게다. 자신의 돈과 지위를 무기로 약자와 여성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중년 남성들 말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지위란 게 그들이 자행하는 추태를 상쇄할 만큼 많고 대단한지는 의문이다. 원래 어중간한 놈들이 더한 법이니까.

점방을 드나드는 개저씨들한테는 제 덕분에 밥 벌어먹고 사는 깎새 역시 하찮게 보이는지 군림하려 든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웠던 초창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반전되었다. 매출이 안정 추세로 접어들자 비로소 맞대응할 깜냥이 생긴 깎새다. 이것이 개저씨를 압도하는 권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허리를 의발의자에 딱 젖히고 앉아서 다리까지 꼰다. 거기가 어디든 앉았다 하면 거들먹거려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일 게 분명하다. 허나 여기 커트점에서만큼은 전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두 다리가 안정적으로 지면에 닿아 있어야 볼기짝이 의자에 착 달라붙어 무게 중심을 단단히 잡아줌으로써 미동이 없게 된다. 이발은 빗 놀음이라서 빗질이 잘 들어야 일속이 알차다. 일단 작업이 빨라지고 머리 매무새가 그럴싸해진다. 그러자면 가장 우선해야 할 전제로 머리통이 함부로 덜렁거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리 하나로 두 다리 값 무게 중심을 감당하려니 될 턱이 있나. 가벼운 빗질 한 번에도 버블헤드 인형마냥 속절없이 흔들리는 머리통 때문에 습관성 울화통 분출증을 억제하느라 생고생인 깎새는 심정적으로야 다리부터 꼬는 손님은 뒤통수부터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어조로 손님 기를 팍 죽이고 들어간다.


- 머리 흔들리다 귀 잘릴 수 있어요. 다리 푸세요.


거기에 카운터 펀치까지 날린다.


- 모름지기 사타구니 통풍이 잘 들어야 정자 수가 늘어나고 그 질도 우수해진답디다. 신문 기사에서요.


조롱은 곧 권력이다.

다른 예. 하대인지 존대인지 모르게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용건만 간단히 밝힐 뿐이었다가 안면 트고 말문이 트였다 싶었는지 대놓고 반말지거리를 시전하던 개저씨. 깎새와 별로 안 벌어질 액면인데도 종놈 부리듯 대하는 품이 꼴불견이었는데 하루는,


- 야, 이짓 해서 한 달에 5백은 벌어가냐?


그 직후로 깎새는 개무시를 채택했다. 눈치가 없는 건지 배알이 없는 건지 머리 깎고 염색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지만 개저씨가 묻는 말에 대답은커녕 철저하게 개무시로 일관 중이다. 미심쩍은 낌새를 맡았는지 대놓고 맞서지는 못하는 개저씨.

깎새 점방을 찾는 개저씨들 특징이 있다. 딴 데를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가성비 좋고 스타일도 받쳐 주니 발길을 옮기는 걸 주저하는 게다. 무엇보다 다른 데서도 오만방자한 자들을 꺼리는 건 거의 비슷하다. 장사치 마음은 장사치가 잘 아니까. 그러니 더 죽을 맛일 게다. 깎새가 만만찮게 나오는데 대안은 없으니 말이다.

갑과 을이 바뀌었고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는 깎새가 권력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허나 통쾌한 반면에 걱정도 크다. 미운 놈한테 떡 하나 더 주는 대신 조롱하고 개무시로 일관하는 태도가 점점 그 가학성이 두드러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사디스트로 흑화되고서야 '내가 원래 그런 놈은 아닌데' 항변한들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저씨들한테는 그래도 된다. 그리 당해도 싼 개저씨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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